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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욱 / 연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메르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다들 무서워 사람 만나는 일조차 꺼리는데도, 묵묵히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병원 의사들과 간호사 및 자원 봉사자 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또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환자들이 끝까지 용기를 내어 이겨내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메르스 격리 대상자들이다. 17일 오전 9시 기준 메르스 격리 대상자는 6508명이다. 일반인은 물론 각 언론에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직장에 출근하고 아무데나 돌아다니는 데 대해 분개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중 결근을 해도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또 메르스 격리 대상이어서 격리 동안의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가 얼마나 되는가.

메르스 때문에 결근한 것은 병가(病暇)로 처리할 텐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에서 병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병가란, 개인이 병에 걸려서 출근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그 기간에 휴가를 주는 것을 말한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병가를 유급 휴가로 처리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병가 중에는 급여를 주지 않는다. 대기업에서조차도 병가를 받으려면 자신의 연차나 월차 등 유급휴가를 다 사용하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

만약 메르스 때문에 14일 동안 격리되느라 출근하지 못한 것을 병가 처리하면, 우선 남아 있는 연월차를 합쳐 10일을 다 사용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4일은 병가 처리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올해 남은 휴가는 하루도 없다. 게다가 많은 중소기업에서 병가는 무급 휴가다. 그 경우 유급 휴가를 다 쓰고도 모자라는 나흘은 급여를 받지 못한다. 회사의 이 처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일부 정치인은 메르스 때문에 결근한 사람들을 산재(産災) 처리 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인 이유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메르스 환자를 만나 병에 걸린 경우에도 산재 환자가 될 수 있겠는가? 억지로 산재로 인정한다는 법 규정이 만들어지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억지 생각을 하는 것은 메르스라는 특별한 전염병 때문에 격리돼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선진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는 상병(傷病)급여 제도가 있다. 개인 질병이라도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 유급 병가를 주는 것이다. 상병급여는 실업급여와 마찬가지로 근로자를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다.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앓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들은 병가가 있어서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메르스라 할지라도.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은 메르스 같은 전염병을 앓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감추고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메르스 의심자로 ‘자가격리’ 대상이 되더라도 일하지 않으면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앓아눕지 않고 움직일 수만 있다면 출근할 수밖에 없다.

지금, 많은 서민이 몸이 아파서 쉬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근로자가 아파도 임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사회는 요원한 일인가. 메르스가 상병급여 제도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