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원주에 정착한 작가가 직접 그린 원주의 동네 풍경.

시골극장 / 원재길 지음 ／ 이랑

‘시골극장’의 작가 원재길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다 10여 년 전 강원 원주로 이주해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시인이자 그림책을 만드는 아내 이상희 작가도 스무 해 가까이 산 서울을 떠나는 데 동의했다. 그곳에서 여전히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삶의 환경과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인간관계 역시 재정립해야 한다.

‘시골극장’은 작가의 원주 정착기다. 마냥 소소한 시골의 삶 같지만 그 안에는 꽤 스펙터클한 사건도 있고,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사도 있다. 작가는 이런 단면을 특정 영화의 한 장면과 비교해 소개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시골극장’이다.

예를 들어 작가는 서울을 떠나 원주로 이사하는 과정을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비교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치히로가 부모와 이사하게 된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고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된 것처럼, 작가의 초등학생 딸이 생애 처음 경험하는 이사는 엄청난 여정이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정든 고장과 오랜 친구들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이사할 때 느끼는 불안감, 작가가 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바로 이 지점을 동화로 빚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삶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관계다. 도시에서는 혼자 살 수 있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 하지만 시골에선 다르다. 농사는 협동이다. 여기선 돈이 아니라 정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작가는 동네 사람들과 처음 맞닥뜨리며 느꼈던 텃세부터 관계의 벽을 허무는 과정 등을 선거와 장례 등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갔다. 이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경험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골의 삶에서는 인간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관계 형성이 있다. 자연과 친해지기다.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농사를 짓고, 야생동물,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땀 흘려 지은 곡식을 지킨다. 작가가 허수아비로도 물리칠 수 없는 새떼를 보며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새’를 떠올린 건 꽤 흥미로운 연결이다. 이 영화 속 새떼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격해 온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현실에선 새가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러고는 덧붙인다. “우둔한 사람을 ‘새대가리’라 부르는 게 얼마나 잘못됐는지는 새한테 당해 본 사람만 안다”고.

작가가 ‘시골극장’을 상영하며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느리고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다. 인터넷이 느려서 우체부도 먹고살고, 두부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 먹고,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는 시골의 삶은 도시보다 느리지만 건강하고 올곧다. 물론 실제 이런 삶에 도전하긴 어렵겠지만 저자의 삶을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힐링을 맛볼 수 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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