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3일간 14억달러 거래
“자금 세탁·조세 피난처로 악용”

크리스티 경매 센터에서 지난 5월 11일부터 사흘간 팔린 미술품들의 낙찰가 총액이 무려 14억1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단일 경매회사의 주간 미술품 낙찰가 총액이 10억 달러(1조940억 원)를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같은 기간 소더비 경매 시장에서도 현대 인상파 작품이 역대 두 번째로 최고가인 3억7000만 달러(4126억 원)를 기록하는 등 고가 낙찰 소식이 잇따르자 미술품 경매 시장에 대한 과열 우려 등이 나오고 있다. 아트 어드바이저 ‘구겐하임 애셔 어소시에이츠’의 애비게일 애셔는 “전리품을 위해서라면 얼마만큼의 요금이든 지불할 준비가 된 새 구매계층이 시장에 진입했다”며 “미술품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자산을 축적한다는 생각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트 어드바이저는 예술가와 수집가의 거래를 이어주는 전문가를 일컫는다.

NYT는 미술품 시장이 소득 양극화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3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가 17만 명을 넘어서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자 고가 미술품의 경매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는 것. 경제 회복 조짐 속에 세계 각국의 양적 완화 및 저금리 정책 등이 계속되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유층의 자금이 고가 미술품 경매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또한 부유층에 고가 미술품은 세계적인 신분 과시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와 관련, ‘닥터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국제경제학) 뉴욕대 교수는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사람들은 값비싼 미술품을 탈세와 자금세탁 용도로 악용하고 있다”며 “불투명하고 부패로 얼룩진 미술품 시장이 조세피난처로 이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술품 시장에서는 현금으로 대금을 치르고 이를 신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금융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 또 스위스 은행에 예금해 두면 조세당국에 적발될 수 있지만, 미술품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거래할 수 있고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자유무역항에 숨겨둘 수 있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는 “규제가 무조건 답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신 미술품 거래를 투명하게 만드는 행동 수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