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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저출산국 오명 왜

“‘까마귀 엄마(Rabben mutter)’라는 말이 사라져야 여성의 출산기피와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2006년 출산 장려를 위한 복지정책을 구상할 당시 이같이 말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독일에서는 자녀를 집에 두고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아이들을 잘 챙기지 않고 차갑게 식은 음식을 준다는 뜻에서 ‘까마귀 엄마’라는 오명을 씌웠다. 자식을 소홀히 돌본다는 편견 때문에 양육부담을 느낀 여성들은 출산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메르켈 총리 자신도 결혼은 했지만 자녀를 낳지 않아 이 같은 편견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2000년대 들어 독일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캠페인과 정책들을 펼쳤지만, 최근 발표된 조사 결과는 그런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10년 내로 고령화 문제가 독일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늙어가는 유럽보다 더 급속히 늙는 독일= 유럽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경제 대국으로 군림하는 독일이 늙어가고 있다. 낮은 출산율에 비해 기대수명이 늘어나 고령화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게 잇따른 조사결과에서 드러난 경고다. 지난 1일 블룸버그 통신, 텔레그래프 등은 함부르크국제경제연구소(HWWI)의 조사결과를 인용, 독일이 일본보다 뒤처지는 출산율로 저출산 세계 1위가 됐다고 보도했다. HWWI는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사이에 독일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출생 비율이 8.2명에 그쳐 영국과 프랑스의 평균 출산율(12.5명)은 물론이고 세계 최저 수준인 일본(8.4명)에도 못 미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에는 독일연방인구연구소(BiB)가 독일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이 1.3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독일연방통계청 역시 지난 5월 말 성명을 통해 “(장기적으로) 독일의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됐다”며 현재 8100만 명인 인구가 오는 2060년에는 6700만 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HWWI는 출산율 감소로 인해 독일의 노동가능인구(20~65세) 비율이 현재 61%에서 2030년엔 54%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기대수명 증가가 더해져 독일의 고령화는 더욱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HWWI는 21세기 중반 독일 여성의 기대수명은 88세, 남성 기대수명은 84세까지 오르며 20~65세 노동가능인구와 66세 이상 고령인구 간 비율이 1대1까지 악화해 공적연금 시스템 등의 위기를 부를 것으로 우려했다.

◇전후 베이비붐과 저출산= 전문가들은 독일 인구 위기의 원인으로 역설적이게도 2차 대전 후 불거진 베이비붐 현상을 꼽는다. 베이비붐 현상에 뒤이어 이를 억제하고자 피임약 복용 등으로 출산율을 낮추는 데 힘쓴 ‘필렌크니크’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80년대를 풍미한 ‘까마귀 엄마’ 편견은 출산 급감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독일 정부는 전 동독 주민들의 열악한 가계 형편이 앞으로도 출산율 감소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기업들의 구인난을 심화시키고 신제품 개발 및 기술 혁신을 저해, 독일 경제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특히 유럽 경제 전체를 견인하는 독일의 위기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텔레그래프는 독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40년 무렵부터 영국과 프랑스에 뒤처지게 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을 소개하며 유럽 지역 내 헤게모니 이동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회계컨설팅업체 BDO의 아르노 프로브스트 상임이사는 “고용주들이 저출산의 결과로 임금비용 상승에 직면했다”며 “튼튼한 노동시장 없이는 독일이 역동적 비즈니스 중심지로 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닝 뵈펠 HWWI소장은 “현재 이민자 유입 추세 정도로는 출생률 저하 등에 따른 인구감소를 막을 수 없게 된다”며 이민노동자 개방확대 등의 정책을 주문했다. 프로브스트 상임이사 역시 강력한 노동시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젊은 이민노동자들이 숙련된 일자리의 공백을 채우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는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거나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신생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떠오르는 등 이민 정책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고령화 난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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