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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섭 / 서울대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여·야 지도부는 지난달 29일 새벽, 국회가 대통령령 수정권을 가지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법사위-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상생 의지가 실종된 정치 환경에서 오랜만에 여·야 지도부가 밤잠도 안 자고 합의에 이른 것은 이례적이다. ‘식물국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한 적이 있었던가? 더구나 ‘국회 개혁’이라는 절체절명의 명제다. 행정부에서 모법(母法)의 정신을 훼손하는 시행령으로 법 취지를 거스른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온 것도 사실이다.

외양(外樣)만 놓고 보면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데 위헌 논란을 빚으며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왜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유권자들의 지지가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야권 지지자들조차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지 않고 있다. 위헌 여부는 상당 부분 법리가 아닌 국민 정서가 결정한다. 간통죄 폐지가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국회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바닥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19~21일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회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에 그친 반면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88%에 이르렀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9일 ‘67주년 국회 개원 기념식’ 축사에서 “국회개혁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국회법 개정안이 관련 상임위에 반년 간 묶여 있는 것은 국민 앞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 개혁’이 아닌 ‘권한 강화’를 위한 조항을 끼워 넣은 점을 간과한 듯하다. 지지율 5%의 국회가 40%의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가져오는 것을 ‘국회 개혁’으로 볼 유권자는 별로 없다.

국회가 권한을 강화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일을 잘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신임하는 국회에 맞서 모법(母法)을 손볼 대통령은 없다. 정치적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신임을 받으면 ‘국회선진화법’과 이미 가진 200여 개의 특권(特權)으로도 국회가 행정부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국회는 입법권을 활용해 권한을 추가 확대하는 길을 택했다.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이명박정부와 각을 세워 미래 권력으로 부상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려는 현 여당 지도부의 의도에도 부합해 더 일사천리로 진행된 듯하다. 그러나 여당 지지층의 다수는 여전히 박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현 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이 가진 ‘콘크리트 지지층’도 없다. 현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여·야 지도부가 이례적인 ‘화합’을 보여줬던 몇 안 되는 또 다른 사례 중 하나가 ‘김영란법’이다. 역시 사립학교 교원이나 언론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두고 위헌 논란이 있었지만, 여·야 지도부는 일심동체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 또한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에게만 적용하고 자신들은 비켜가 ‘권한 강화’ 효과가 있는 법안이었다. 반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나 적체된 민생법안은 ‘국회법 개정안’처럼 일사천리로 처리되지 못했다. 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논란 등 내놓는 법안마다 미덥지 못하다.

권한 강화는 ‘일하는 국회’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고 나서 추진해도 늦지 않는다. 사실, 일만 제대로 한다면 법 개정 없이도 국회의 실질적 권한은 자연히 확대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반발에 박 대통령에게 “헌법 공부를 더 하라”고 독설을 쏟아냈다. 여·야 지도부 또한 민의(民意)를 더 정확히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