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요건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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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 경제산업부 차장

요즘은 한물갔는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국력(National Power)이나 국익(National Interest) 같은 개념의 정의(定義)를 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학 시절 미국 등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내준 과제물을 작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엔사이클로피디어 브리태니커(Encyclopedia Britannica), 국제사회과학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등을 보고 국력, 국익 등의 정의를 살펴본 기억이 난다. 당시 국제정치학자들은 국력의 구성 요소로 다양한 것을 거론했지만,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것이 인구와 영토였던 것 같다.

1970년대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방에서 중국은 ‘영원한 잠재력(Forever Potential)’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은 인구, 영토 등 모든 측면에서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갖췄지만, 실제로는 초강대국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방에서 “중국이 조만간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의 전망은 번번이 어긋나곤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 등장 이후 중국에 일단 자본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오늘날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데 채 40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에는 인도가 중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7.5%로 중국(6.8%)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국가가 강대국이 되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영국(인구 약 6400만 명, 영토 약 24만4000㎢) 정도에는 근접해야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인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약 5100만 명의 인구와 10만㎢의 영토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초적인 물리적 조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한이 통일을 해야 그나마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1960년대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할 수 있다’는 정신 하나로 오늘날의 한국을 일궈왔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복지 등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가끔 우리나라가 세계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경제 기적을 성취한 민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소국이 자손만대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환 보유액, 재정 건전성 등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서 언젠가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통일이 돼야 우리나라도 강대국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이다. 요즘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현안에서 가장 결여된 것이 먼저 근심하는 마음인 것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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