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 김자옥이 생전 마지막으로 출연한 ‘봄날은 간다’의 명자 역을 올해는 양금석이 이어간다. 사진은 공연 중 한 장면. 쇼플레이 제공

악극 ‘봄날은 간다’ 열연 양금석

“그분(고 김자옥)이 연기한 ‘명자’는 참 사랑스러웠죠. 여리고, 안아주고 싶고…. 근데 전 어때요? 양금석 표는 좀 강한 편이죠.”

지난 1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악극 ‘봄날은 간다’. 이 작품은 고 김자옥의 마지막 작품이다. 지난해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혼신을 다해 ‘명자’를 연기했다. 양금석(54)은 “앞서 김성녀, 김자옥 두 베테랑이 맡았던 역이라 부담이 된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쌓아온 연기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며 “나만의 색깔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니, 훨씬 부담이 덜해졌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국민 큰누나’의 모습 그대로다. 지난 14일 저녁, 드라마 촬영을 막 마치고 공연장에 도착한 양금석을 무대 뒤 분장실에서 만났다.

“악극이 정말 하고 싶었어요. ‘아, 나 시켜주면 잘 할 텐데’ 하며 기다렸는데, 하하. 최주봉 선생님이 추천하셨다고 해요.” 양금석은 1980∼1990년대 연극과 뮤지컬에 꾸준히 출연했다. 10여 년 전부터는 국악 공연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본래 ‘우리 것’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고 한다. “한국전통예술학교 3년 과정도 마쳤어요. 경기민요 이수자가 됐지요.”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베트남 파병까지…. ‘봄날은 간다’는 한국 현대사에 혹독한 시련을 준 시기를 뒤돌아 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동명의 노래가 전하는 애잔함과 슬픔이 극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를 헤쳐 온 ‘명자’의 삶은 기구하다. 남편 동탁(최주봉·정승호 분)이 배우가 되겠다며 첫날 밤에 집을 나간 후, 홀로 치매 걸린 시아버지와 폐병에 걸린 시누이, 그리고 매일 구박하는 시어머니(최선자 분)를 모시고 산다. 남녀 쌍둥이를 낳았지만, 딸은 시어머니가 어딘가로 보냈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힘겹게 버틴다.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만나지만, 첫날 밤 “족두리 쓰기에 참 예쁜 머리”라고 칭찬했던 그는 명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이 한 말도, 그 ‘머리’의 주인공도 험난한 세월 속에 다 잊혀진 게다. “명자는 남편을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해요. 그저 ‘어딘가에 잘 있겠지’ 하고 기다리며 사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는 남편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딸과의 해후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연기랄 것도 없이 눈물이 막 나죠. 객석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관객들이 함께 우는 건 느껴져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출연 작품은 ‘봄날은 간다’지만 실제로 양금석의 삶은 요즘 ‘봄날’이다. 싱글 중년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감춰왔던 예능감을 뽐내고 있다. 세련된 외모에 가려졌던 털털한 성격과 순박한 모습도 인기다. 그는 “쇼 프로그램에 자주 안 나가다 보니, 나를 제대로 못 보시는 것 같다”며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예능과 드라마로 바쁘지만, 무대엔 꾸준히 오를 예정이다. 오는 12월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연극인 ‘종이 달’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으로 분한다. 악극 ‘봄날은 간다’는 6월 21일까지 계속된다. 최주봉, 정승호, 윤문식, 최선자 등 출연. 1588-5212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