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재판때도 통용되고
강제성 상징 표현이지만
국가개입 등 부인하려는
아베의 꼼수 용인한 셈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하버드대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로 표현한 것은 미·일 당국 간 물밑 합의에 따른 발언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로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사과’라는 표현 없이 과거사를 교묘히 부정한 셈이 됐다. ‘인신매매’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 아베 총리가 이를 악용한 점도 엿보인다.

28일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인신매매로 표현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미 정부가 이를 용인한다는 사전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미국과 서구에는 사과의 뜻으로 비칠 수 있게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도록 단어 의미상 모호함의 틈새를 파고든 행태”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보스턴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된 여성들은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피해를 봤다”면서 “내 입장은 이전 총리들과 다르지 않고, 고노(河野) 담화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처음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쓴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일본 정부가 치밀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고 미국으로부터 이를 용인받을 수 있는 전략을 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다’라고 표현했을 뿐 명확한 공식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과거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나치 전범재판에서 인신매매라는 표현이 반인륜범죄를 뜻하는 단어로 통용된 바 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