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단국대 총학생회와 법과대학 학생회 집행부 10여 명이 지난 3월 18일 경기 용인시 단국대 죽전캠퍼스 본관 앞에서 신영철 전 대법관과 김옥랑 꼭두박물관장의 석좌교수 임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희태·신영철 계기로 본 ‘석좌교수’의 세계

골프장 여성도우미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재임용과 관련,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물러났다. 박 전 의장뿐만 아니라 신영철 전 대법관도 최근 단국대 석좌교수로 가려다 “서울중앙지법원장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들에게 사실상 유죄를 선고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등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석좌교수가 어떤 자리이기에 국회의장과 대법관을 지낸 사람이 가려고 하는 것일까.

‘석좌교수’(碩座敎授·named endowed chair professor)를 사전에 찾아보면 ‘학술기관이나 대학에서 석좌기금이나 대학발전기금 등으로 재원을 마련해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석학을 초빙해 임명한 교수’라고 나온다. 석좌교수를 위한 재정은 외부 기관이나 기업·개인 등이 기탁한 출연금으로 충당한다.

◇석좌교수는 학문적 업적으로 임용= 석좌교수 제도가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석학의 교육·연구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인 만큼 강의를 하지 않아도 상당한 보수가 지급되는 등 대우도 파격적이다.

카이스트가 지난 1985년 한국 최초로 석좌교수 제도를 시행했다. 서울대는 1994년 석좌교수 제도를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경우 보통 대학 석좌기금에 의한 명예 석좌교수, 정부기관이나 단체·개인 출연금에 의한 출연 석좌교수로 구분한다. 대상은 해당 학술기관이나 대학에서 장기 근속한 교원 및 연구원, 국제적으로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은 저명한 학자 또는 기술자 등이다. 처우는 기금 예산의 범위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제급여·연구비·행정간접비 등을 지원받는다. 기타 세부 조건은 시행 기관이나 대학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교원인사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학술기관의 장이나 총장이 결정한다.

◇학교 방패막이로 등장해 문제= 박 전 의장의 재임용에 대해 건국대 학생대표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는 성명서를 내고 “성추행으로 도덕적·사회적 물의를 빚은 박 교수에 대한 징계가 당연한데 학교 측은 재임용을 결정했다. 이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처사다”며 반발했다. 건국대는 “석좌교수는 강의도 없는 무보수 명예직이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지난 3월16일 박 전 의장의 석좌교수 재위촉을 철회했다.

단국대 총학생회와 법과대학 학생회도 ‘신영철 석좌교수 임용 반대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같은달 18일 “우리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분을 석좌교수로 두고 있다”며 신 전 대법관의 석좌교수 임용 철회를 요구했다. 대책위 소속 학생들은 지난 2일 단국대 죽전캠퍼스 본관 총장실을 점거, 신 전 대법관의 석좌교수 임용 철회 또는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한 사립대 교수는 “학교 구성원들이 석좌교수 재임용에 강하게 반대하자 하루 만에 재임용을 철회할 정도라면 학문적 평가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는 자리였던 것을 시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석좌교수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이 임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의장이나 대법관 등을 거친 인사들의 명성을 이용, 학교의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요직을 거친 인사들을 석좌교수로 앉혀 뒀다가 학교나 학교법인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들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다른 사립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석좌교수로 데려와 대학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학에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명성을 이용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석좌교수 자격이 도마에 오르자 뚜렷한 임용기준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계 한 인사는 “석좌교수 임용 기준이 대학마다 있지만 엄격하지 않다”며 “총장이 문제가 있어 총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복귀하기 위해 석좌교수로 온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누가 석좌교수를 하고 있나= 최근 논란이 된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의 원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다. 임권택 감독은 동서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부산대, 전윤철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조선대 등에서 각각 석좌교수를 하고 있다.

석좌교수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지만, 월 300만 원 안팎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의를 하면 이보다 더 받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