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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 고려대 교수·북한학

방위산업의 총체적 부실과 비리가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각종 고가 첨단 무기 도입과 관련해 어마어마한 커미션 거래가 드러나고, 이에 따른 특혜 시비로 각 군의 전·현직 최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명품 무기’라 자랑하던 K-11 공중폭발탄이 전량 폐기될 위기에 처하는 등 방산(防産) 비리는 국가안보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까지 비화했다.

율곡사업, 백두금강사업 비리는 물론, K-2 흑표전차, K-21 장갑차, 특전사 방탄복, 신형 철모에 이르기까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부실한 무기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구조 때 동원되지 못했던 통영함 음파탐지체제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수를 책임진 스텔스함의 3인치 함포 오작동 등 무기체제는 적과 대처하고 있는 군의 방위력을 훼손하고 군인들의 생명마저 위협한다.

방산 체제의 부실과 비리는 일차적으로 해당 방산업체나 무기중개상, 그리고 극히 일부지만 부패한 군 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군 내부와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돼 있는 잘못된 상황 인식과 안보관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가 대적(對敵)하고 있는 북한이나 북의 군사력에 대한 오판과 무지함에서 비롯된다. 군과 국민 대다수는 북한이 세계 최빈국이자 가장 폐쇄적이고 낙후된 사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군과 수령 독재, 당국가 체제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절대 무시하거나 방심할 수 없다.

물론 군이나 전문가들은 북한군이 양적인 면에서 우리에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를 근거로 지속적인 방위비 증강과 한미동맹의 중요성만을 강조할 뿐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대응 조치는 하지 못했다. 각종 방산 비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격한 비난과 질타, 경각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핵심 이유는 결국 북한군에 대한 방심과 오판이 자리잡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은 이미 3차례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 운반 수단인 각종 미사일을 끊임없이 개량, 실전에 배치해 왔다. 그들의 선전선동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위협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전면전을 자행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서해 5도에 대한 기습공격이나 육상에서의 국지전·게릴라전·사이버전 등 우리 사회의 취약 지점을 집중 공격할 능력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북한의 각종 무기 체제는 결코 최첨단 고가 장비와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외양이 조잡하고 엉성하게 보이고 선전을 위해 모양이나 내는 그런 군사력으로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화려한 색상이나 유려한 디자인이 실제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란 근거는 역사상 어느 전쟁에서도 확인된 바 없다. AK 소총이나 다연장포, 스커드 미사일, 미그기의 위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제 방산 비리와 부실은 더는 방치할 수 없으며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방산 비리를 우리 사회 부정부패의 한 부류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방산 비리와 부실이 적발돼도 그 처벌이 미약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다수 방산 비리 연루자가 집행유예 또는 가석방된다. 국가 안보 위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법조계와 언론의 책임도 크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대북 인식의 안이함이 그 도를 넘고 있다. 방산 비리와 불량품 군납(軍納) 책임자를 매국(賣國) 이적(利敵)행위로 엄히 단죄하고 잘못된 부패 사슬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 더는 지체할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