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정보기관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권한과 정보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때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다소 힘을 잃었지만 2000년대 이후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KGB에 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실 푸틴 대통령이 당선되고 장기 집권에 성공한 데에는 정보기관의 공이 상당히 크다. 1975∼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KGB 요원으로 주로 활동했던 푸틴 대통령은 1998년 연방보안국장, 1999년 KGB 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축적한 정보력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1999년 8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깜짝 발탁됐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KGB의 후신인 해외정보국(SVR)과 국내 부문 정보를 다루는 연방보안국(FSB), 군 정보를 총괄하는 군사정보총국(GRU) 등을 통해 권력을 확고히 다졌다. 특히 FSB는 스페츠나즈(Spetsnaz), 알파(ALFA) 등 자체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피의자 수사권 및 자체 감옥 운영, 가택 수사권 등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들이 반(反)푸틴 인사들에 대한 암살의 배후라는 의혹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사례는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암살이다. 넴초프 전 부총리는 2월 27일 오후 11시 30분 크렘린 궁 담장에서 200m 떨어진 다리 위를 여자친구와 함께 건너다가 괴한 2명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2000년 이후 넴초프 전 부총리는 수많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정치인 세르게이 유셴코프(2003년)와 여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전 정보요원 알렉산더 리트비넨코(2006년), 신흥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2013년) 등도 암살된 바 있다. 해외정보 수집이 목적인 SVR도 최근 체첸 반군 동향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KGB 1국의 후신이다. SVR는 정치·경제·군사뿐 아니라 최근 국제테러·무기밀수·핵확산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에서 2010년 체포된 미모의 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SVR 소속으로, 비밀 훈련을 받은 뒤 부동산 사업가로 위장해 고급 정보를 빼돌린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러 정보기관들은 ‘하이브리드 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보전과 사이버전, 경제적 압박 등 비군사적 방법을 활용해 상대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로, 지난해 크림반도 합병에 활용해 성공했다. 이제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라이몬즈 베요니스 라트비아 국방장관은 “잘못된 정보와 뇌물, 경제적 압박을 이용하는 게 ‘푸틴표’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