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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도 한풀 꺾이며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맘때면 왠지 모르게 자주 피곤해지고 오후에는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조는 일이 많이 생긴다. 증세가 심해지면 소화도 잘 안 되고, 업무나 일상에도 의욕을 잃어버리고 쉽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등의 갱년기 증상과 비슷한 신체적 변화도 나타난다. 이와 같은 증상들을 춘곤증이라고 하는데, 계절의 변화에 우리 몸이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일시적인 증상이다. 의학적으로는 ‘봄철 피로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춘곤증은 우리 뇌가 계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봄철 해 뜨는 시각이 빨라지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크게 줄어 잠에서 깨는 시각이 겨울보다 빨라진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에 활동이 늘어나며, 신진대사 활동도 왕성해진다. 이에 따라 피로가 좀 더 많이 쌓이며 쉽게 졸음을 느낀다. 춘곤증은 겨울에 운동이 부족했던 사람이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춘곤증은 일시적 증상이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질병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어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 러프버러대 수면조사센터 연구팀은 영국 성인 남녀 1만6000명의 수면습관을 13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1시간 또는 그 이상 낮잠을 자는 성인의 경우 조기 사망할 가능성이 약 32% 높았고, 하루 평균 1시간 이내로 낮잠을 잘 경우 조기 사망률도 14% 늘었다.

특히 낮잠을 자주 자는 사람은 폐질환, 기관지염 등의 질병을 앓을 확률이 높으며, 매일 낮잠을 즐기는 사람은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무려 2.5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연구원들은 낮잠이 폐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과 연관돼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폐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짐 혼 박사는 기존 연구처럼 짧은 낮잠은 건강에 큰 피해를 주지 않지만, 1시간 이상의 긴 낮잠은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동시에 갑자기 낮잠 시간이 길어졌다면 질병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춘곤증은 교통사고 유발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 교통기후환경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60만 건의 교통사고를 계절별로 분석한 결과, 봄철 졸음운전 사고가 전체의 27%에 달해 겨울의 18%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점심 먹은 뒤 졸음이 몰려오는 오후 2∼4시에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했고 도로 이탈로 인한 사고가 많았다.

장시간 운전 시 순간순간 졸음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의학적으로 ‘마이크로 수면’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 수면은 깊은 잠과 마찬가지로 뇌의 대부분이 잠이 들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 같은 수면 상태의 운전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끊어지기 때문에 음주운전보다 훨씬 위험하다.

음주는 혼미한 정신이라도 있지만 졸음은 운전 중에 순간적으로 무운전자 상태가 돼 자동차는 완전한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낮 시간에 잠을 오래 자면 오히려 생체리듬을 깰 수 있기 때문에 휴게소 등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춘곤증을 예방하기 위해선 피곤해도 움직여야 한다. 노곤한 몸에는 10∼20분 잠을 청하는 게 나을 법하지만, 춘곤증 해결에는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춘곤증을 이기려면 햇볕을 정기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 쬐는 것이 좋고 걷기와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리에 앉아서도 팔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어깨와 목을 돌려 풀어준 뒤, 깍지를 끼고 목덜미를 주물러 주는 것도 춘곤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몸이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춘곤증은 3주 이내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춘곤증을 조금 더 빨리 없애고 싶다면, 기상 시간을 30분∼1시간 정도 앞당기고 취침 시간 역시 앞당겨 주면 좋다. <도움말=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박정범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동부지부 원장>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