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부 등 5대 헌법기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26일 공개한 고위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 내용을 보면 지난 한 해 평균 9500만 원씩 늘었다.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결과이긴 하겠지만 경제 불황으로 시름이 깊어지는 서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최근 공무원의 노후 보장을 위해 국민 세금을 얼마나 더 투입해야 하느냐를 놓고 국가적 시름이 깊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층 더 난감한 문제는 공직자 재산등록·공개 제도의 원천적 설계 결함으로 공개 재산의 그 같은 외형마저 ‘절반의 진실’에 그칠 개연성이 짙다는 점이다. 사전적으로 직계 존비속 재산의 고지(告知)를 거부할 수 있고, 사후적으로 신고 내용의 검증 수단도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고지 거부 비율이 30%를 오르내린다. 국회의원은 공개 대상 292명 중 109명, 37.3%가 부모나 자녀의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재산 증가액이 1명 평균 1억2100만 원에 이르렀다. 정부의 고지 거부율은 평균 26.9%로서, 국무위원 37.5%, 청와대 38%, 검찰 57.1%, 국세청 75%의 순으로 가팔라진다. 대법원의 고지 거부는 46.8%에 이른다. 이 정도면 불가피한 예외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처럼 비친다.

화근은 1983년 제정 공직자윤리법이 재산등록 제도를 시행한 데 이어 1993년 재산공개 제도로 확대 강화하면서 고지 거부의 틈새를 열어뒀던 그 지점이다. 당시도 명분은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의 사생활 보호였다. 지위가 높아갈수록 권리는 축소되고 의무는 확대돼야 하는 게 공직 윤리의 본령이다. 그럼에도 고위직의 고지 거부가 이처럼 만연한 것은 이런 당위의 전도(顚倒)다. 또 지난해의 예에 비춰 신고 내용의 10%선은 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은 허위·부실이라고 한다. 이 역시 선택과 집중을 거친 철저한 실사를 통해 허위·부정 사례를 찾아내 엄정 문책해야 함은 물론이다.

공직자윤리법의 지향은 청렴과 신뢰다. 고지 거부는 이에 역행한다. 재산등록·공개 제도가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춰 제대로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