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대사에는 유독 ‘퍽킹(fucking)’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보통 욕으로 쓰이는 이 말은 ‘매우’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말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돼 한글자막으로 만들어진다. 영화 자막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황석희 번역작가는 “‘퍽킹’은 욕이라기보다 강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며 “10대 아이들이 이 말을 쓸 경우 요즘 유행하는 ‘완전’이라고 번역하고, 중년이 ‘퍽킹 굿’이라고 할 경우 ‘더럽게 좋네’ 정도로 풀어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영화 대사는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야 한다. 진중한 캐릭터가 가벼운 표현을 쓰면 영화의 맛이 떨어진다”며 “또 공포영화에도 웃긴 장면이 나오고, 코믹영화에도 진지한 장면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자막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8년 전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용 영화 자막 번역 작업을 시작한 후 3년 전부터 극장 개봉작 자막 번역 일을 해온 황 작가는 최근 번역한 작품 중 영화 ‘인사이드 르윈’(2014년)에서 주인공 르윈이 부르는 노래 가사 ‘아이브 빈 올 어라운드 디스 월드(I’ve been all around this world)’를 ‘세상 구경 잘 했소’로 번역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배우들이 말을 빨리하고, 대사가 많은 영화는 번역하기 힘들다”며 “특히 바움 벡 감독의 ‘프란시스 하’와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의 번역이 가장 힘들었다. 두 영화 모두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가 많아 반복해서 영상을 보며 번역 작업을 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의 자막을 만든 박지훈 번역작가는 “매너스 메이크스 맨(Manners maketh man)”이라는 콜린 퍼스(해리 역)의 중세식 영어 대사를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로 번역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장면 분위기에 맞게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했다”며 “영화 자막 번역을 할 때 최대한 원문을 따라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박 작가는 또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년) 중 피트가 졸리와 싸운 후 엘리베이터에서 한 대사 ‘아이 돈 원트 투 토크 어바웃 잇’(I don’t want to talk about it)을 ‘됐거든’이라고 번역해 영화의 맛을 한껏 살리기도 했다. 이십세기폭스 영화의 자막 번역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는 박 작가는 “영화사에서 마케팅 의도에 맞게 원 대사를 바꿔 자막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경우 일부 관객들은 블로그에 그 내용을 올리며 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고 영화 자막 번역을 하며 힘든 점을 토로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현지 직장에도 다녔던 그는 “영화 자막 번역작가들은 영어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자막을 만든 후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역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