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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일 / 탈북작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 2일 시작된 제28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는 북한의 인권 유린 실상이 속속 폭로되고 있다.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과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ICNK) 등 국내외 북한 인권단체들은 지난 17일 유럽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잔혹한 인권 유린을 규탄했다. 필자도 지난 2월 마지막 주 스위스에서 진행된 ‘2015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의’에 참석해 직접 체험한 북한 해외 근로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증언한 바 있다. 주어진 15분이 너무 짧아 그 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한다.

북한의 해외건설은 1974년 5월 김일성의 리비아 건설 지시로 발족했다. 그 모체는 필자가 있었던 평양대외건설기업소다. 여기에 입사하려면 직계 6촌 안에 정치범·외국친인척·행불자 등이 없고, 전직 5년간의 ‘생활평가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19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노예 노동을 강요당한다. 1996년 11월, 평양을 벗어나 처음으로 나온 쿠웨이트의 숙소는 허름한 여관방도 아닌, 1991년 걸프전 때 파괴된 학교의 교실이었다. 게다가 샤워장의 물이 충분치 않아 목욕도 할 수 없었다. 원주민 입주용 주택을 짓는 작업에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점심·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한 13시간 동안 노역을 해야 했다. 휴식은 금요일(주재국 휴일) 오후, 그것도 고작 2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공사장 주변에 둘러쳐진 높이 2m의 철조망을 가리키며 왜 이렇게 해 놓느냐고 통역에게 물었더니, “이곳 노동법에 따라 외국인 근로 현장은 다 이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근로자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 당국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외출은 꿈도 못 꾼다. 특히 단독 외출은 철저히 금지된다. 탈출 방지를 위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월급을 받아 고향의 어려운 부모 형제에게 보낼 마음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 준다던 월급 120달러는 없었다. 화가 치민 노동자들이 “월급을 왜 안 주느냐”고 간부들에게 따졌다. 황당하게도 “고용회사가 자금 사정이 안 좋아 못 준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근로자들도 어설프게나마 현지 용어가 가능하게 되자, 석 달째는 “당에서 월급을 주라는 지시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당의 배려로 이곳에 왔고 쌀밥에 고깃국이라도 먹지 않는가? 당에 감사하자”고 했다. 그 말에 수백 명의 노동자 그 누구도 대꾸를 못했다. 당은 곧 수령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당의 방침이라면서 “3년 임기 끝나고 평양에 가서 일한 만큼의 돈에 해당하는 TV, 냉장고, 녹음기 등 가전제품을 준다”고 했다. 북한에서 40년 일한 근로자 봉급으로 흑백 TV 한 대 못사는 데 비하면 엄청난 특혜다. 훗날 한국으로 오기 위해 들렀던 현지의 유엔 산하기관에서, 외국 고용회사가 우리 월급을 꼬박꼬박 북한 당국에 자동이체해 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그것도 북한 근로자 한 명에게 지불한 임금(賃金)은 450달러, 그중 120달러도 주기 싫어 노동당이 갈취한다. 북한은 세계 30여 개국에 9만∼12만 명의 근로자를 파견했고, 이들의 인건비는 모두 노동당 39호실(김정은 통치자금 외화관리 전담부서)로 이체됐다. 북한의 낡은 경제를 감안하면 3대 독재정권 유지에 절실한 달러다.

낯설고 물 선 타국에서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살인적인 노동으로 번 달러는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 김일성·김정일 시신 보관 비용으로 쓰인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해외 노예 노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