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6일 울산 남구 신정동 태화강 둔치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며 운동을 즐기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6일 오후 울산 남구 신정동 태화강 둔치. 따뜻해진 날씨 덕분인지 태화강변 산책로는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는 40∼50대 아주머니들을 비롯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50대 아저씨, 게이트볼장에서 여가생활을 하는 70대 할아버지 등, 제각각 도심 속의 강이 선물해준 자연을 느끼며 건강을 다지느라 분주하다.

이날 같은 아파트 주민 3명과 함께 운동을 나왔다는 조현미(여·45·남구 신정동) 씨는 “태화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대나무숲이 있고, 인도교가 있고, 또 이곳을 이용하는 수많은 시민들 때문에 매일같이 운동을 나와도 항상 새롭다”며 “하루에 한 번씩은 태화강에서 운동을 하는데, 태화강과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며 만족해했다.

하수·폐수 1990년대 ‘죽음의 강’
1000억 투입 ‘생명의 강’ 거듭나

재첩·연어 서식하는 ‘젖줄’ 변신
대나무숲, 휴식·체육 공간 조성

계절마다 축제·문화 행사 열려
주말엔 하루 2만 4000명 찾아

태화강은 평일에는 주부들에게 인기지만, 주말에는 직장인들에게 포근함과 안식감을 안겨준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박영훈(59) 씨는 “주말에는 어김없이 중학생인 딸과 함께 태화강의 다리를 가로지르며 20㎞를 걷고, 십리대밭의 대숲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데 너무 좋다”며 “태화강의 강바람과 대숲의 바람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지에서 울산으로 이주를 한 공공기관 직원들에게도 태화강은 서울 한강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강이다. 지난해 3월 울산으로 이사 온 강윤호 근로복지공단 고객홍보실장은 “사실 처음에 울산에 오면 삭막해서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막상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이 있고, 주변에 각종 친수공간이 있고 하늘에는 철새까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서울 한강보다 시민과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시간 나는 대로 태화강에 나와 운동도 하고, 휴식을 즐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태화강이 있기까지는 많은 진통도 뒤따랐다. 한국의 산업수도라 불리는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고 중공업단지가 본격 육성되면서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태화강으로 몰려든 하수 유입량도 크게 늘어났다. 정화조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밀려든 생활 오수와 공장 폐수는 어느새 태화강을 서서히 오염시켰고, 결국 1990년대는 ‘죽음의 강’으로 변하고 말았다.

급기야 1996년 태화강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11.3ppm으로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됐고, 2000년 6월 23일 태화강에서 숭어 1만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울산시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태화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주택가에서 쏟아져 나와 태화강으로 유입되는 생활하수를 차단하기 위해 하수관을 설치하는데 113억여 원을 투입하고, 가정에서 나오는 오수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가정오수관연결사업에 480여억 원을 투자했다. 하루 6만㎥ 규모의 생활하수 및 공장·축산폐수의 방류수 수질을 법정기준치보다 최대 10배까지 강화할 수 있는 하수처리시설도 만들었다. 2002∼2007년에는 350억 원을 들여 하류 지역인 삼호교∼명촌교 88㎞ 구간의 강바닥에 50㎝ 이상 쌓였던 오염퇴적물 67만㎥를 걷어냈다. 울산환경협의회와 태화강시민환경감시대, 141개 기업체와 민간단체도 ‘1사 1하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등 태화강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태화강의 수질은 하류기준으로 1996년 BOD 11.3ppm(6등급)에서 2007년 1.7ppm으로 대폭 개선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1.6ppm)까지 줄곧 1등급 수준인 2.0ppm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수질이 좋아지자 동물이 먼저 알고 찾아왔다. 공업화 이후 사라졌던 재첩이 30년 만에 돌아왔고 연어떼도 매년 찾아왔다. 여름이면 대숲에 백로 8000마리가 둥지를 틀어 국내 최대 규모의 백로서식지로 탈바꿈했으며, 겨울이면 떼까마귀 5만3000여 마리가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화려한 군무를 선사하고 있다. 30년간 사라졌던 재첩이 태화강 전역에 서식하고 있으며, 전국 최대의 바지락 종패 공급지가 됐다.

태화강 둔치는 시민들의 여가 및 휴식공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태화강을 따라 양쪽으로 산책로가 23.3㎞, 자전거도로 21.4㎞가 조성됐다. 중구와 남구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을 시민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인도교(십리대밭교)를 만들었다.

도심 내 시원함을 안겨주는 대나무숲 22만5000㎡가 조성됐으며,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는 초화단지가 10만㎡에 이른다. 둔치 곳곳에는 축구장과 테니스장, 풋살경기장, 파크골프장, 게이트볼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고, 각종 운동시설도 곳곳에 구비 돼 있다.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난 태화강에는 수시로 걷기대회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 국제 설치미술제, 고래축제 등 매년 80여 회 50만 명이 참가하는 다양의 축제와 문화의 행사장으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태화강에는 평일 하루 1만5000여 명, 주말에 하루 2만4000여 명이 찾는 국내 최대규모의 도심 생태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태화강은 120만 울산시민의 젖줄이자 최고의 휴식공원”이라며 “앞으로도 태화강이 전국 도심에서 가장 사랑받고, 아름다운 강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 글·사진 곽시열 기자 sykwa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