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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 / 천유주 글·그림 / 창비어린이

몇 분 안 지났는데 한 시간도 더 된 것 같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시곗바늘 돌아가는 물리적 속도와 관계없는 심리적 시간, 내 마음이 느끼는 주관적 시간 감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른보다는 바깥 세계의 일정에 대한 부담이 적은 어린이는 이러한 마음의 시간에 의지하여 세상을 느낀다.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며 집을 지키는 시간, 나머지가 있는 나눗셈 문제를 푸는 시간, 아끼던 마지막 캐러멜이 입안에서 녹는 시간, 정든 강아지와 뒹구는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학교가 끝난 게 언제인데 이제 오는 거니? 30분만 축구하고 온다고 했잖아”라고 꾸지람해도 그 말이 번번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어린이가 마음의 시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천유주의 그림책 ‘내 마음’은 그런 마음의 시간을 이해해주는 그림책이다. 터벅터벅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비둘기 한 마리와 둥근 도넛을 나누어 먹으려고 계단에 걸터앉는다. 아직 친한 단짝을 만들지 못한 봄날 어느 오후인가 보다. 냄새를 맡고 날아온 비둘기 떼가 도넛을 가로채 가져가 버리고 어디 갈 데도 없는 ‘나’는 뱃속의 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계단에 앉아 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짝꿍에게 손을 흔들어보지만 본척만척 지나가고 어디선가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전단지가 바람결에 날아와 뺨을 친다. 전단지를 품에 안은 채 강아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한 여자아이가 지나간다. 아찔한 마음으로 길고 긴 시간 속을 걷고 있을 텐데 따라가 도와주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난다.

이 그림책의 전반부가 터벅터벅 걷는 속도라면 후반부에는 따뜻한 반전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주인공 ‘나’도, 읽는 이도 가뿐하게 이 계단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손 내밀기를 두려워하는 내성적인 아이에게 새 학기는 길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다. 수많은 감정만 혼자 헤아리면서 3월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분명히 있고 그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 그림책은 알려준다.

세밀한 배경 그림 속에는 수십 가지 숨은 그림이 있어서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서 참깨 알 만큼 작은 그 단서들을 찾다 보면 서먹서먹한 학기 초의 나날도 훌쩍 지나갈 것 같다. 주인공이 첫 장면에서 풀숲에 떨어뜨린 인형은 어떻게 가방에 다시 매달리게 되었을까. ‘함께 읽기’가 책 속에 들어 있어서 그림 속 수수께끼를 같이 풀어준다. 말수가 적지만 속마음은 다정한 어린이에게 권한다.

김지은 <어린이·청소년 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