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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두꺼운 소설인가. 아니다. 역사책 같다. 그런데 탐험기처럼 흥미진진하다. 그러고 보니 여행기에 제일 가까워 보인다. ‘오디세이’라 이름 붙일만한. 2000년대부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된 이탈리아 현대작가이자 명망 있는 중부 유럽 전문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는 약 3000㎞에 달하는 다뉴브 강줄기를 따라 4년간 여행하며 이 거대한 ‘산문시’를 완성했다. 1986년 처음 발간된 이 책은 저널리스트의 르포르타주(기록문학)가 주는 치밀한 현장감과 역사 인식, 보르헤스, 입센, 카프카, 릴케 등에 관한 뛰어난 비평을 쓴 독문학자로서의 감성,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흥분과 향수가 뒤섞여 ‘여행문학’의 지형을 급진적으로 바꿔놓았다.

마그리스는 흑림(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해 흑해(다뉴브 삼각주)로 들어가는 거대한 하구까지 여행하며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중요한 도시들, 거대한 초원과 습지 풍경, 민족 관습, 문학, 역사, 언어 문제를 살핀다. 그러면서 중부 유럽의 뿌리뿐 아니라 존재론적 경험과 사색까지 담아낸다. 여기에는 마그리스 자신이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인 트리에스테 항구도시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작용했다.

그는 이에 대해 “이탈리아인, 슬라브인, 크로아티아인, 오스트리아인, 아르마니아인, 그리스인, 유대인을 아우르는 경계도시 트리에스테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경계의 작가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뉴브 강은 종종 반게르만주의의 상징적 후광에 휩싸인다. 순수 혈통을 고수하는 전설의 지킴이 라인 강과 달리, 다뉴브 강은 여러 민족이 서로 만나고 교차하고 섞이는 기나긴 강이다. (중략) 다뉴브 강은, 게르만 제국과 종종 논쟁적으로 대립하는 게르만-마자르-슬라브-로망스-유대의 중부유럽, 요하네스 우르치딜이 프라하에서 칭송했던 ‘힌터나치오날’ 세계제국, 즉 ‘민족들을 아우르는’ 세계다.”(39쪽)

마그리스에게 다뉴브는 그 자체로 중부 유럽의 혈맥을 짚어나가는 겹겹의 프레임이 되기도 하는데, 유럽의 정치사 수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다민족 역사와 소수민의 인권과 삶의 양식을 문화·사회·정치적 입장에서 치밀하게 그려낸다. 1986년 이 책이 나온 이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과 비교해봐도, 당시 발칸반도에 불어닥친 정치사 이념 투쟁 및 인종 문제, 민족 분열과 국경 문제가 얼마나 큰 돌풍을 예고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여행안내자 ‘안카 할머니’의 개인사를 통해 발칸반도 전체의 혼돈과 생명력을 압축해내는 통찰력도 매우 놀랍다.

또한, 이탈리아 대표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논설위원으로서, 유럽의 여러 언론사에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