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 고학번 대학생 또는 복학생을 삼엽충에 빗대 희화화한 게시물이 올려져 있다. 트위터 캡처

서울 서대문구 A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09학번 최진호(27) 씨는 최근 용기를 갖고 학과 개강파티에 참석했다. 신입생 때부터 학점, 공모전 등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 변변한 추억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던 탓에 큰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냉랭한 대우에 최 씨는 일찍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신입생이 대부분인 개강파티에서 복학생이라는 이유로 ‘별난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며 “한참 어린 후배들 틈에서 ‘화석’이 된 것 같았다”고 씁쓸해했다.

최근 대학 캠퍼스에서 10학번 이상 고학번들의 설움이 깊어지고 있다. 치열한 ‘스펙’ 경쟁에 치여 또래와의 교우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한 고학번들은 뒤늦게 학과 모임 등 학내 활동에 참석하지만, ‘늙은이’ 취급받기 일쑤인 것이다.

12일 대학가에 따르면 고학번의 고립 현상은 학과 행사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한 대학교 4학년인 10학번 김범석(26) 씨 역시 얼마 전 새 학기를 맞아 연극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지금은 탈퇴를 고려하고 있다.

김 씨는 “후배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이라며 “‘나이 먹고 동아리에 들어와 한 것도 없이 선배 대접받으려고 한다’거나 ‘여자 신입생한테 흑심을 품은 거 아니냐’는 등 험담이 들려온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와 같이 고학번을 삼엽충이나 시조새, 화석, 고려청자 등으로 희화화한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룡이 모여 있는 사진 밑에 “11학번 이상 고학번들이 개강총회에 와서 밥을 먹고 있다”거나 오래된 물고기 화석을 관찰하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밑에 “새내기들이 09학번을 관찰하고 있다”는 설명을 적는 식이다.

임운택(사회학) 계명대 교수는 “개인주의의 심화, 취업난에 따른 경쟁 등이 대학의 동기 개념 등 또래 관계를 와해시킨 결과”라며 “캠퍼스 내 학번 분절화 현상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평·김대종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