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중앙에 감시탑을 세운 판옵티콘 이미지.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무한경쟁과 성과주의에 지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피로사회’(2011년)로 각종 ‘○○사회’ 열풍을 일으킨 뒤, 후속작 ‘시간의 향기’(2013), ‘투명사회’(2014)로 ‘인기 철학자’라는 한국 사회에서 귀한 입지를 다진 재독 철학자 한병철(사진) 베를린예술대학 교수. 지난해 독일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그의 신작 ‘심리정치’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피로사회’의 첫 문장만큼이나 인상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첫 문장에 이어 저자는 “자유의 감정은 일정한 삶의 형태에서 다른 삶의 형태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나타나는 에피소드, 즉 막간극”이라고 비유해 설명하는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신자유주의 시대, 개인의 자유가 넘쳐나는 것 같은 시대에 자유는 위기에 처했고, 지금은 사라져 가는 ‘옛 시절의 에피소드’가 됐다는 말이다. 자유의 역전, 자유의 위기다. 그런데 자유의 위기를 몰고 온 장본인은 ‘권력자’도, ‘통치자’도 아니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할 수 있다’는 성공 신화와 ‘하고 싶다’는 들끓는 욕망에 내몰려 스스로 경영자이자 동기부여자가 되어 자기 자신을 끝없이 내몰고 착취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실패했을 때 자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결국 탈진해 현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인 우울증과 소진증후군을 앓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들볶는 욕망은 자신의 욕구가 아니라, 자본이 만들어낸 자본의 고유 욕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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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은밀하고 세련된 신자유주의 통치술,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을 ‘심리 정치’로 규정하고, 이 시스템을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길을 모색해 본다.

한병철의 책이 그렇듯 ‘심리정치’도 120여 페이지의 얇은 소책자다. 하지만 내용은 밀도 있고, 헤겔, 니체, 마르크스, 푸코와 아감벤의 철학적 사유를 검증하며 시대를 통찰해가는 논리는 치밀하다. 여기에 엄밀한 단어 선택과 예리한 묘사, 상징적인 문장들은 매우 문학적인 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우울증 시대, 디지털 통제사회, 스스로를 착취하게하는 신자유주의 구조 같은 그리 새롭지 않은 논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들이 결합돼 대중성과 전문성의 경계를 오가는, 예민하면서, 명확하고 힘 있는 텍스트를 만든다. 이것이 한병철 신드롬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신자유주의의 심리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지탱하는 시스템은 디지털 네트워크다.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폰은 묵주,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 페이스북은 디지털 교회로, 개인들은 스스로 네트워크에 동참하고, 자발적으로 노출하며, 자신의 정보를 올린다. 또 신자유주의는 시민을 사랑부터 정치까지 모든 영역에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지배 관계에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가로막고 억누르는 대신 더 활발하게 하고, 더 자극한다.

결국 우리 시대는 거대한 디지털 판옵티콘을 만든다. 중앙의 원형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의 원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어 죄인을 감시했던 1798년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판옵티콘과 달리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판옵티콘이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향해 달리고, 끊임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트위트하고 포스팅한다.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모든 기능적 약점과 정신적 억압을 깨끗이 제거하는 ‘힐링’으로 몰려가지만 삶의 부정성을 모두 제거한 힐링은 결국 킬링으로 귀결된다. 모든것이 결핍이 아닌 과잉이며, 억압적인 권력행사가 아닌 친절한 유혹이다. 당연히 저항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하는 노예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감시자이자, 수감자가 되고, 모든 감시 임무는 개개인이 떠맡게 된다. 여기에 빅데이터는 자본의 가장 효과적인 심리정치적 도구로 작동한다. 빅데이터로 모은 정보는 지배를 위한 지식으로서, 이는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우리의 무의식까지 파악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에 한병철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권력, 억압, 금지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로, 이 시대의 문구는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를, 자유로운 시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자본의 레디 메이드 옵션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자유에 이를 수 있을까. 저자는 현대의 이단아인 ‘바보’ ‘백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단아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쥐고 있는 자다. 그는 정통에서 이탈할 용기가 있다. 그는 순응의 압박을 용감하게 떨쳐 버린다. 이단아로서의 바보는 합의의 폭력에 맞서는 저항의 형상이다. 순응의 압박이 더 강화되는 오늘날, 이단적 의식의 날을 벼려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