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딱, 딱! 고요속 죽비소리
선원서 마지막 용맹정진
선승 23명 산문 밖으로 나서
전국 98곳 2196명 수행 마쳐
종정 진제 “화두 참구해야”

이미지 크게보기 전남 장성군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마친 스님들이 걸망을 메고 산문(山門)을 나서고 있다. 조계종 제공

4일 전남 장성군 백암산 자락에 자리한 고불총림 백양사. 절 내 선방 고불선원에 방장(方丈·총림의 최고 어른) 지선스님(사진), 주지 원일스님을 비롯해 10여 명의 스님이 좌복(좌선하는 방석)에 앉았다. ‘딱, 딱, 딱’. 열중(悅衆·선원의 규율을 통솔하는 스님)의 죽비소리에 세상은 고요에 잠긴다. 눈을 감고 참선 수행하는 선승(禪僧)들의 자세는 한치 흐트러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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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백양사 고불선원·운문선원, 말사인 용흥사 몽성선원 등에서 23명의 스님이 동안거(冬安居·10월 보름부터 석 달간 외출을 삼가고 참선 수행하는 일) 마지막 정진에 들었다. 1400년 전 백제 무왕 때 여환조사가 창건한 백양사는 호남불교의 요람으로 불리는 곳. 특히 백양사에서 산 속으로 1시간가량 더 걸어 들어가야 닿는 운문선원은 ‘북 마하연 남 운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으뜸가는 참선 도량으로 알려졌다. 용성·석전·만암·고암·서옹 등 수많은 선지식(善知識)이 이곳을 거쳐 갔고, 조계종 최고 정신적 지도자 ‘종정(宗正)’이 7명이나 났다.

원일스님은 “백양사는 전국 8개의 총림(선원·강원·율원 등을 두루 갖춘 큰 사찰) 중 가장 가난하지만 예부터 최고의 공부 도량으로 꼽혔다”면서 “‘포난 사음욕(飽煖 思淫慾·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이 생기고)/기한 발도심(飢寒 發道心·배고프고 추우면 도심이 난다)’의 마음가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5일 정월대보름, 석 달간 산사(山寺)에 머물면서 참선 수행에 정진한 수좌들이 다시 산문을 나선다. 이들을 향해 지선스님은 “안거가 조용한 절 내에서 이뤄지는 정처 수행이라면, 해제 후는 시끄러운 세상에 나가 펼치는 요처 수행”이라며 “스님에게 수행이 아닌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땀내나는 현장으로 뛰어들어가지 않고 절방에 앉아 참선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안거 동안 붙들었던 화두(話頭)를 바깥세상에서 확인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선스님은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절 밖으로 나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는 등 1990년대 초반까지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앞장선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다시 절로 돌아왔지만,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지선스님은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고 인문과학은 숨었다. 양극화로 인한 불신, 불안, 불평등, 부조리 등으로 현재는 인류 역사상 삼독(三毒·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이 가장 최고조에 달한 시기”라고 했다. 이어 “공영·공존을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수행뿐”이라며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늘 깨어 있으라”고 일갈했다.

이번 동안거에는 조계종 전국 98개 선원에서 2196명의 스님이 용맹 정진했다. 스스로를 산사에 가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하루 8∼10시간씩 참선 수행에 임했다. 그러나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은 이날 동안거 해제 법어에서 “해제라는 생각일랑 지금 당장 내려놓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면서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절대로 바랑을 짊어지지 않겠다는 철두철미한 신심으로 빈틈없는 정진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스님들에게 당부했다.

장성 =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