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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강모(여·25) 씨는 3일 오전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함께 신설동 로터리 근처에서 144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캔 음료수 두 개를 들고 창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2인용 좌석에 자리를 잡은 강 씨 커플은 버스가 출발하자 취업 고민 등을 나누며 창밖 풍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버스가 동대문, 장충동을 지나 강남으로 향했지만, 강 씨 커플은 다음 정류소를 알리는 안내방송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서울 시내 곳곳을 구경하며 버스 데이트를 즐기던 이들은 2시간가량이 지나 버스 승차지점인 신설동 부근에 돌아오고 나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강 씨는 “일주일에 한 번 남자친구와 버스 데이트를 한다”면서 “둘 다 취업준비생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버스를 데이트 장소로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오전 시간대 창밖이 잘 보이는 저상버스를 이용한다”면서 “직장인들과 마주치면 괜히 주눅이 들고 데이트한다는 기분도 들지 않아 한산한 오전이나 늦은 밤 데이트를 즐긴다”고 덧붙였다.

버스 데이트를 마치고 강 씨 커플이 향한 곳은 인근 한 ‘헌혈의 집’. 강 씨 커플은 이곳에서 한 시간가량 헌혈을 하고 프랜차이즈 카페 이용권(음료+쿠키)을 받았다. 헌혈의 집에선 간단한 비디오 게임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강 씨 커플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헌혈의 집을 찾는다고 했다. 강 씨는 “요즘 커피나 영화 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헌혈을 하고 티켓을 종종 받아온다”면서 “좋은 일도 하고 데이트 비용도 아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저가 데이트’로 연애비용을 줄이는 커플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준비생 김모(여·25) 씨는 얼마 전부터 남자친구와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서울 시내 고궁을 돌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 고궁 입장료는 1000원에서 3000원 사이로 김 씨 커플은 매주 다른 고궁을 찾아다니며 데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 캠퍼스 역시 김 씨 커플의 단골 데이트 장소다. 김 씨는 “취업 준비생이다 보니 학생 때처럼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 “데이트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료 영화를 상영하는 도서관이나 구청 등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김 씨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실 데이트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저가 데이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다 언제 취업이 될지 모르니 취업 준비생들이 궁여지책을 택한 것 아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