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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烈女)가 아니라 ‘열(十)녀’다. ‘절개를 굳게 지키는 여자’라는 뜻을 비틀어 남성이 기대하는 ‘판타지’, 즉 모성성, 지성, 순결, 정절, 건강미, 내조력, 미모, 색기, 가학성, 강인함 등 ‘춘향’을 열 개로 조각냈다. 그렇게 탄생한 연극 ‘열녀춘향(10 Girls Choonhyang·김현탁 연출·포스터)’은 한국 사회에서 ‘춘향’이 갖는 상징성 속에 뒤섞인 욕망의 시선을 들추어낸다. 지난해 ‘바이 사이클’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2015년 첫 작품이다.

‘열녀춘향’은 춘향을 전통적 틀 밖으로 과감히 끌어내 여성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묻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성성이란 결국 남성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시선 못지않게 여성 자신의 욕망의 산물이 아니냐는 것.

무대 위 열 명의 여배우들은 선정적인 몸짓으로 관객의 시선을 자극하면서, 그로 인한 쾌감을 노골적으로 만끽한다. 그 몸들에는 여성의 욕망과 남성의 욕망이 혼재한다. 즉, 여성들은 자기 몸에 대한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된다. 그 몸짓은 때로 대중문화 속 섹시 아이콘으로 편입된 아이돌 그룹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미인선발대회에 나가 미모를 뽐내기도 한다. 또, 체조 경기장 위 우아한 리듬체조 선수가 되기도 하고, 링 위에서 격한 레슬링으로 남성들과 대적하여 강인함을 보이기도 한다. ‘열녀춘향수절가’라는 한국 고전 문학이 독특한 형식적 실험과 미학적 접근을 거쳐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것. 김현탁 연출의 이 ‘뻔뻔한’ 상상력과 새로운 시선이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진성, 김미옥, 장인혜, 김유현, 박하경, 허솔 등 출연.

오는 6일부터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Space)111에서 공연된다. 02-766-1774.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