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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 논설위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한 날은 박근혜정부 출범 3년째를 맞은 지난달 25일이었다. 노동자·서민을 살리기 위해 박정권에 대한 전면투쟁에 나선다고 했다. 지지율이 바닥인 정부를 향해 일격을 날린 셈인데 반응은 영 신통찮다. 민노총이 살리겠다는 노동자·서민 쪽에선 박수가 없고, 직접 겨냥한 청와대나 재계에서는 긴장감이 없다. 강성노조의 대표 조직이 선전포고했는데도 다들 뚱한 표정이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단독 면담을 요구했다. 3월 31일까지 ‘노동시장 구조 개악 즉각 중단’ 등 민노총 주장에 대한 답변서를 들고 회담에 응하지 않으면 4월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면담 성사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시한은 노·사·정 대표들이 ‘노동시장 구조 개선’ 의제를 마무리 짓기로 한 날이다. 어떻게 결론 나든 파업은 불변이라는 뜻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연말 민노총 첫 직선에서 ‘즉각적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뭘 위해 파업하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취임 후 요구조건을 짜는 기이한 일이 진행됐다. 그렇게 만든 ‘4대 요구’의 핵심이 노동자 죽이기 정책 폐기,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이다. 대다수 국민이 경제 재도약을 위해 시급하다고 보는 노동·공공 개혁을 개악으로 치부하고,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노동 섹터에서 편중된 자원·기회를 사회적 기대 수준으로 재설정해 고용의 탄력성과 안정성을 높이려는 작업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부조리는 노조 있는 대기업 정규직과 노조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100 대 37, 30년 이상 근속자와 신입사원 간 100 대 30의 임금 차가 대변한다. 대기업 열 곳 중 세 곳에서는 고용 세습이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그걸 고쳐 비정규직 처우를 높이고 미취업자와 실업자에게 기회를 더 주자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불편할 수밖에 없는 쪽이 대기업 정규직 노조다.

노조는 어떤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하든 결국 이해단체다.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실속을 차리는 집단이지, 의협심으로 뭉친 조직은 아니다. 민노총도 예외일 순 없는데, 아닌 척하다 보니 말이 꼬이고 조합원들도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민노총의 지분은 4%다. 노조조직률이 10%, 그중 전국조직 미가입 2%와 한국노총 가입 4%를 빼면 그렇다. 중소기업이 주력인 한노총과 달리 민노총은 번듯한 대기업 노조를 거느린다. 그렇다면 민노총의 선택지는 2가지다. 4%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를 당당하게 펴든지, 노동단체 대표임을 자임하되 가진 것을 얼마간 내놓는 것이다.

투쟁에서 유효한 무기는 대중의 분노다. 민노총은 노동 개혁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노린 노동자 죽이기’라며 분노를 부추긴다. 그러면서 직접 관련 없는 박 대통령, 재벌 등을 집중 거론하며 이들에 대한 반감을 교묘히 섞고 있다. 또 파업을 예고한 4월은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이고, 세월호 1주기가 돌아온다.

노동의 기회와 성과를 다수가 공유하자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이다. ‘노동자 죽이기’는 소수 노동귀족만이 느끼는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노사정 합의는 어떤 식으로든 기득권을 잃는 것이고, 그러니 노동시장 변화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민노총이 왜 뜬금없는 총파업, 또 박정권 퇴진투쟁을 들고 나왔을지 짐작이 간다. 며칠 전에는 한 청년 단체가 민노총을 찾아가 청년 일자리 대책을 강구해 달라며 항의 집회를 가졌다. 대기업 노조의 특권은 곧 청년 좌절의 다른 표현이다. 민노총이 불 지핀 대중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무분별한 총파업으로 대중과 멀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민노총 조합원은 비정규직들이 겪는 모순에 대해 분노가 없다.’ 다름 아닌 민노총 내부에서 나온 말이다.(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2007) 8년이 지난 지금도 민노총 내부에서 파업 회의론이 나온다고 한다.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핑핑 돌아가는데 그들의 논리와 전술, 구호나 노래는 어찌 그리 변하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민노총의 시계(時計· 視界)는 여전히 ‘1987년’에서 고정돼 있다. 한때 한국사회 유력 집단이던 민노총이 대중의 무관심과 냉소 속에 존재감을 잃어가는 모습은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