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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로 본 조선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황재문 책임기획 / 글항아리

사물(事物). 새삼스럽지만 그 뜻을 풀어 보면, ‘일과 물건’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는 그 범위가 축소됐지만, 본래 이 말은 우리 환경을 구성하는 존재로부터 제도, 예법,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지칭했다. 덧붙여, 이러한 사물에 대한 지식을 모은 게 ‘사전(事典)’. 그렇다고 이 책이 ‘조선의 백과사전’처럼 방대한 건 아니다. 황재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조선 사람들의 애환과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을 만한 사물로 범위를 좁히고, 그 사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규장각 열한 번째 교양총서의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책은 역사를 보는 또 하나의 창, ‘사물’을 열어 보인다.

조선을 들여다보기 위해 선별된 사물은 쉽고 친근하다. 집, 책, 감옥, 무기, 옷, 악기부터 문양과 무구(巫具), 구한말의 태극기와 전화, 철도까지 아우른다. 한옥은 조선의 일상을 담는 그릇이다. 전봉희(건축학) 서울대 교수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의 집 문화와 달리, 조선 시대의 ‘집’은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넓은 범위의 생활공간 자체를 의미했다”고 밝히고 있다. 생계수단인 벼농사는 서로 간의 협력을 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같은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 관계가 효율적이었다. 따라서 여러 채의 건물이 모여서 하나의 집을 이룬 한옥이 발달한 것. 온돌, 마루, 부엌 등을 하나의 건물 안에 넣다 보니 자연스레 규모가 커지면서 각 방이 길게 한 줄로 늘어지는 일자 집이 됐다.

또 다른 공간인 감옥을 살펴보자. 물론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곳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감옥이 아니라 ‘옥’이라고 했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는 ‘지옥의 풍경, 옥에서 펼쳐진 고통의 낱낱’ 편에서 사회의 그늘진 공간의 모습을 살펴본다. 감옥제도는 세종대에 본격적으로 정비됐는데,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징역형이 없었으며, 다만 형벌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을 수감하던 곳이었다. 신참 죄수들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이 밖에 과거급제를 위해 사물에 ‘꿈’을 담았던 조선 사람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조선조 500여 년 동안 문과에 급제한 사람은 1만4600여 명으로 연평균 30명.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이었다. 바람은 온갖 물건에 담겨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사대부의 복된 일생을 상상화로 그린 평생도, 오자등과(五子登科·다섯 명의 아들이 모두 과거 급제하기를 바란다는 뜻) 등의 글귀를 자수로 수놓기도 했다. 또, 파도를 뚫고 하늘로 치솟는 잉어를 그린 ‘약리도’가 사대부들이 쓰는 벼루나 연적, 필통, 그릇 등에 문양으로 새겨지기도 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