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공사현장 출장뒤 영어 부담감에 파견 포기
우울증 겪다가 회사서 투신…1·2심에선 원고패소 판결

업무상 필요한 영어 실력에 대한 부담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기업 부장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A 씨의 부인(49)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A 씨는 지난 1990년 대기업 D사에 입사한 이후 약 19년 동안 국내의 토목사업 업무를 담당했다. A 씨는 2008년부터 해외플랜트 사업 관련 부서로 옮겼고, 해외 파견 근무를 자원해 쿠웨이트 공사 현장 파견이 확정됐다. 그러나 A 씨는 파견 직전인 2008년 10월에 공사 현장에 출장을 다녀온 뒤 영어에 대한 부담감으로 파견을 스스로 포기했다. A 씨는 부인에게 “영어도 못해 해외파견도 못 나가는 내가 앞으로 부하 직원들 앞에 어떻게 서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 다음날 회사 건물 옥상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대로 투신했다. A 씨의 부인은 2010년 5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지급 청구를 했으나 공단 측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과 대법원은 A 씨의 사망과 업무와의 인과관계 판단을 달리했다. 1·2심은 “A 씨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업무상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우울증세가 악화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A 씨가 회사에서 처한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업무상 스트레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