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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인가 / 송호근 지음 / 문학동네

1912년 4월,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을 비롯한 많은 남성들이 마지막까지 구조 작업을 벌이다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생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하지만 스미스 선장의 외침이 상황을 다잡았다.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한마디였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살아 나왔다. 제 꿈을 채 펼쳐 보지 못한 고등학생 등 304명의 무고한 생명은 목숨을 잃었다. 선내 안내 방송에서는 “자리를 지키라”는 말만 반복됐다.

참혹한 심정으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던 송호근(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자문했다. “이 선장이 설사 ‘한국인답게 행동하라(Be Korean)!’고 외쳤다 해도,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한참 궁리해도 답을 낼 수 없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행동을 규제할 공유 코드,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가 한국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세기 넘게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동원됐을 뿐 ‘시민’이 되지는 못했다는 결론에 닿았다. ‘나는 시민인가’(문학동네)는 그가 자기 반성으로 써내려간 에세이다. 송 교수는 “내가 진짜 시민인지를 자기 검열한 고백”이라고 했다. 그는 우선 사적 영역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레 ‘나’를 드러낸다. 꽃 이름을 헷갈리고도 아내에게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일화 등을 통해 ‘나 홀로 집념’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시선을 사회로 확장할 때는 뼈저리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청년들은 경쟁사회의 높은 벽을 넘으며 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차이나 임팩트가 한국을 강타하지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사회 양극화와 갈등은 더욱 첨예해진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드러났지만 ‘국가 개조’라는 수사만 있었을 뿐 실제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늠름하게 지키지 못하고 세상 현실에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할 뚜렷한 사회세력이 되지 못한 ’소시민으로 남겨졌다.

이는 우리 사회와 정치가 경제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송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뒤따라야 할 불평등 완화, 이념 갈등 철폐 등의 가치를 세우지 못했다.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1만 달러 시점인 1980∼1990년대 분배구조와 복지개혁에 착수해 사회적 투명성, 합리성을 증진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으나 아직 미진한 시민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시대 정신은 ‘시민 민주주의 증진’이다. 송 교수는 시민 민주주의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 시민권, 시민윤리가 핵심 요건이라 말한다. 특히 시민윤리는 빈자와 부자, 약자와 강자, 자본과 노동 등 사회적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윤활유다. 분배와 복지로 사회보장의 기본요건을 갖추는 일도 시급하다. 시민이 국가의 주체가 될 때 ‘한국인답게 행동하라(Be Korean)!’는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