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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몸은 늙었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요. 정신이 있는 날까지 글을 써내려 갈 겁니다.”

경남 밀양 얼음골에 사는 85세 할머니가 둘째 딸을 먼저 보낸 후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쓴 삶의 기록을 문집으로 엮어 출간했다.

주인공은 지난해 12월 문집 ‘황혼의 오솔길’(은빛)을 펴낸 박시례(사진) 할머니. 얼음골에서 ‘울산댁’으로 불리는 박 할머니는 1930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한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6·25전쟁 전후 좌익활동에 참여하고 사천 여맹위원장으로 부역한 일로 1950년 초 진주형무소에서 2년간 수감생활을 해 평생 보안관찰 대상자로 고통을 견디며 살았다. 부산에서 지인 소개로 우연히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1남 3녀를 뒀으며 울산을 거쳐 마흔 살부터 밀양에 정착해 살고 있다. 2000년대부터 1년의 절반을 미국에 사는 막내딸 집에서 보내고 있는 할머니는 2006년 문학을 좋아했던 둘째 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슬픔을 달래고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난생처음 펜을 들었다. 홀로 막내딸 집에 앉아 원고지와 공책에 무명 치마를 찢어 상처 부위를 동여매 주던 어머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등교하던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 학창시절 점심을 굶어야만 했던 둘째 딸 등 기억의 단편들을 하나둘 펼쳐냈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써내려간 시와 수필, 기행문은 100편을 훌쩍 넘는다. 그중 출간한 문집에는 ‘내 검정 고무신’을 포함한 시 32편과 ‘황혼의 오솔길’ 등 수필 18편을 실었다. 현재 보스턴 막내딸 집에 머물고 있는 박 할머니는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삶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글을 써 왔는데 어느 날 막내딸이 원고를 보더니 ‘책을 한번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 발간하게 됐다”며 “정신은 나이 든 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글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밀양=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