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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오자와 세이지·무라카미 하루키 / 권영주 옮김/ 비채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책 내용을 이토록 잘 반영한 제목도 드물 듯싶다. 제목 그대로다. 책은 저자가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80) 씨를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오자와 씨’란 인물이 간단치 않다.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세계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가르침을 받은 마에스트로(Maestro)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거쳐 30년 가까이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한 오케스트라를 이렇게 긴 기간 이끈 것은 음악사에서 드문 일이다. 일본에서는 그를 언급할 때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명장’이란 표현을 빼놓지 않는다. 이런 대가와, 그것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니 저자가 위축될 법하다.

하지만 기우(杞憂)다. 저자가 또 만만치 않다. 일반인 사이에서의 명성은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이란 수식이 잘 어울리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6)다. ‘노르웨이의 숲’ ‘1Q84’ 등 전 세계 45개 이상의 언어로 50편 이상의 작품이 소개됐고,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말하자면, 책은 일본 문화계 두 거장의 만남이다.

이들은 하루키가 우연히 오자와의 딸 세이라 씨를 알게 되면서 연이 닿았다. 그러던 중 2009년 오자와가 식도암 제거수술과 재활치료로 음악 활동을 쉬게 됐고, 하루키가 그 틈을 이용해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관련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1년여간 일본, 하와이, 스위스 등지에서 대화를 나눴다. 오자와가 가나가와(神奈川)현에 있는 하루키의 자택과 도쿄(東京)의 작업실을 방문했고, 하루키가 열차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는 오자와와 동행하기도 했다. 하루키는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함을 느끼는 점,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는 점, 고집이 센 점을 자신과 오자와의 공통점으로 꼽으며 “이 세 가지 점에서 이 정도로 ‘그래, 정말 그렇지’하고 자연스레 공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대담은 주로 하루키가 질문을 던지고, 세이지가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재즈 애호가인 하루키는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풍부한 음악적 식견을 바탕으로 오자와에게 스승인 사이토 히데오(齊藤秀雄)와의 인연,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성향 차이,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들의 특징 등에 대해 묻는다. 오자와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때로는 연륜이 묻어나는 음악적 견해를 밝히며 충실히 답을 이어간다.

특히 카라얀과 글렌 굴드(캐나다 피아니스트), 번스타인과 굴드, 번스타인과 루돌프 제르킨(미국 피아니스트), 오자와와 제르킨 등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을 들으면서 각각의 특징과 차이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여기서 오자와의 눈을 통해 본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지휘 스타일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그에 따르면 카라얀은 자신만의 음악적 방향성을 가지고 단원들을 엄격히 통제한다. 앙상블을 희생하더라도 굵고 긴 선을 중요시하며 연주를 이끌어 간다. 이에 반해 번스타인은 천재 타입이지만, 오케스트라를 훈련하는 재주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단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즉흥적으로 순간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음악에 대한 얘기인 만큼 책에서는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 말러 교향곡 2번,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등 많은 클래식 음악이 등장한다. 둘이 함께 곡을 음미하는 순간도 많다. ‘여기 좀 느리지 않습니까?’ ‘방금 거기는 좀 위험했죠’ ‘여기 팀파니 괜찮지 않나요?’ 같은 말이 수시로 나온다. 도무지 그 곡을 찾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독자는 클래식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는지 책에 소개되는 곡들을 세 장의 CD로 출시한 음반이 장기간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때때로 하루키의 문학세계도 엿볼 수 있다. 하루키는 단순한 취미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전 글 쓰는 법 같은 걸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고, 딱히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서 글 쓰는 법을 배웠느냐 하면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거기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 글에 리듬이 없으면 그런 거 아무도 안 읽습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