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국가를 못믿겠다" 멕시코 대학생 43명의 집단 실종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독립기념일인 지난 11월 20일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왕궁 앞에 모여 시위대를 막아선 연방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실종된 멕시코 대학생이 경찰과 갱단의 공모로 살해됐다는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했으며, 독립기념일인 이날 최고조에 이르렀다. AP연합뉴스

아름다운 휴양지 아카풀코로 유명한 멕시코 남부의 게레로주 이괄라시에서 지난 9월 26일 교사임용 차별에 항의하던 43명의 교육대 학생들이 집단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돼 외신 뉴스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던 이 사건은 멕시코 당국의 무성의로 그대로 잊힐 뻔하다가 피해 학생들의 가족과 시민단체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놀라운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마약 갱단에게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처치하도록 사주하고, 갱들은 이들을 끌고 가 집단 학살한 뒤 시신을 찾지 못하도록 훼손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이다.

피해자의 시신이 확인되지 않아, 가족들은 이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행방을 찾았지만, 최근 시신이 유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발견된 뼛조각에서 실종학생의 유전자가 확인되면서 이들이 모두 살해됐을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범죄집단과 결탁해 부정을 일삼는 지역 경찰의 실상이 드러나고 시장과 주지사까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괄라시에서 시작된 항의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 정문이 불타는 등 반정부 시위로 격화되고 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최근 경찰 조직 재정비를 포함한 치안 개혁안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국민은 절망과 함께 자식을 잃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드러나는 진실 지난 10월 28일 멕시코 게레로주 코쿨라 외곽의 쓰레기 매립지에서 법의학 감식관 등 전문가들이 시위 도중 실종된 대학생 43명의 유해를 찾고 있다. 이후 지난 7일 멕시코 당국은 이 지역에서 실종 학생 중 1명의 불탄 뼛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E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