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1월 30일 몰도바 총선을 앞두고 수도 키시너우의 중심가에 사회당의 선거홍보 포스터가 내걸려 있다. 사회당 당직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엇인가 상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아래쪽에 ‘사회당:러시아와 함께’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냉전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몰도바가 그 전장의 최전선에 있다.”

몰도바 싱크탱크 퍼블릭폴리시재단의 오아주 난토이 소장은 지난 11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몰도바의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동서 갈등은 시작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서쪽에 인접한 몰도바는 11월 30일 ‘친러시아’ 대 ‘친서방’ 계열로 갈린 총선에서 친서방 연합인 자유민주당과 민주당, 자유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101석의 의석 가운데 55석을 차지하게 됐다. 몰도바는 내각책임제 국가로, 이번 총선에서 선출된 101명의 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며 정부 구성도 승인한다.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다시 한 번 친서방 연합이 승기를 잡기는 했지만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단일 정당으로만 따져보면 친러시아 정당인 사회당이 가장 높은 지지율인 22%를 기록하며 26석을 차지했고, 또 다른 친러 정당인 공산당도 20석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친서방 그룹이 총 득표율에서 승리한 만큼 현재로는 친서방 연정이 꾸려질 가능성이 높지만, 접전을 치렀던 만큼 정부구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몰도바, ‘제2의 우크라이나’ 될까 노심초사 = 면적 3만3843㎢, 인구 400만 명의 ‘소국’ 몰도바가 ‘냉전의 전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과거 구소련의 일부였던 몰도바는 지난 1991년 독립했지만, 여전히 상당수 국민들이 러시아계이며 러시아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몰도바 지역 내에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사실상 러시아 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으며, 스스로 독립했다고 주장하지만 몰도바와 다른 국가들이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몰도바 남동쪽의 가가우지아 지역도 친러 성향으로, 몰도바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면 최소한 ‘자치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가우지아 지역의 미하일 포르무자르 대표는 구소련 시절 장군 출신으로 몰도바가 친서방 정책을 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2월 가가우지아 주민투표 결과 97.2%가 ‘유럽연합(EU)과 몰도바의 관계가 더 가까워져선 안 된다”고 응답했으며, 98.4%가 “몰도바는 러시아가 이끄는 유라시아 연맹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몰도바의 총선은 전쟁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유세 초반 승기는 친러 세력에게 있었다. 몰도바 시민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부터 집권 연정을 이끌고 있는 친서방 정당들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매우 부패했다”고 평가했다. 지지율도 사회당이 계속해서 가장 높았으며, ‘조국당’이라는 친러시아 정당도 18%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이며 2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러 진영에 ‘악재’가 터졌다. 11월 23일 총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조국당 후보인 레나토 우사토보가 러시아 정보 당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800만 레우(약 6억 원) 상당의 불법 선거 자금을 받았다는 녹음 기록이 공개된 것이다. 친서방 진영은 우사토보 후보를 러시아의 첩자로 몰았고, 우사토보 후보는 녹음이 “전후 관계를 무시한 채 짜깁기된 것”이라며 맞섰다. 하지만 몰도바 선거관리위원회는 11월 27일 우사토보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으며, 조국당 당수인 그리고리 페트렌코는 러시아로 도주했다. 우사토보 후보는 선관위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스캔들’이 미국과 EU가 각본을 쓰고, 친서방 연합 정당이 연출을 한 것이라는 의혹이 번지고 있어서다. 몰도바의 친서방 계열 정치인들조차 “이번 스캔들은 친서방 정당이 (밀리고 있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를 쓴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몰도바 정부는 선거구 개편을 하며 친러시아 지역 선거구 15개를 5개로 줄이면서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50만 명의 ‘친러’ 투표권을 ‘선거권을 줄 수 없다’는 갖은 이유를 대며 박탈했다. 심지어 이번 선거에서는 친러시아 정당인 공산당과 유사한 이름과 정당 로고를 가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당도 등장했는데, 이코노미스트는 “노인이나 눈여겨 보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친서방 연합 정당이 이와 같은 ‘속임수’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성난 러시아,“몰도바 제재 강화할 것” = 현재까지 러시아는 이번 선거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고 있지 않으나 전문가들은 “러시아발 제재가 시작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럽의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몰도바는 주요 산업이 농업이고, 러시아로의 농산물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자유민주당의 친서방 정책에 러시아가 수입 제한으로 보복하고 있어 몰도바 경제는 매우 위축된 상태다. 로이터통신 등은 “러시아는 계속 몰도바가 친서방 정책을 펼친다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완전한 독립’을 지지하거나, 크림반도처럼 합병할 것이라 협박하고 있다”며 “몰도바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 육류, 채소 등의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에서 몰도바로 가는 에너지도 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어렵게 승기를 잡은 친서방 연합은 EU와 미국에 몰도바 경제 성장을 위한 투자를 호소하고 있으며, 정국 안정을 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공산당과 손을 잡을 생각도 하고 있다. 공산당은 러시아와 ‘경제적 협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사회당은 경제적 협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합병’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일 정치평론지 리얼클리어월드는 “EU가 몰도바와의 교역량을 늘린다면, 러시아의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몰도바가 충분히 자생할 수 있다”며 “넋 놓고 허술하게 지원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끝나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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