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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우 / 전국부장

베이징(北京) 특파원 시절 기자는 베이징 뒷골목인 후퉁(胡同)을 즐겨 찾았다. 도심 대로변 빌딩군에서 한 블록만 더 들어가면 마주하는 후퉁에는 베이징 전통 주택인 쓰허위안(四合院)이 즐비하고 낡은 자전거를 수리하는 작은 가게, 거리 이발사에다 헌 책을 팔고 있는 삼륜자전거 노점상 등 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후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베이징의 문화 저력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기자는 베이징으로 여행을 오는 지인들에게는 반드시 후퉁 방문을 추천했다. 그런 후퉁이 대규모 도시 개발로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한때 7000여 개에 달한 후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1000여 개 정도만 남았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후퉁과 쓰허위안이 사라진 자리에는 최첨단 빌딩들이 들어서고, 살아남은 ‘후퉁’도 카페와 찻집, 호텔과 여관 등으로 바뀌고 있다. 후퉁과 쓰허위안이 사라지면서 이곳에 살던 베이징의 원주민들도, 거리 이발사도, 자전거를 수리하던 농민공도 흔적을 감췄다. 베이징의 숨은 명소와 풍경들이 사라지면서 중국인들은 베이징의 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움이 서울에서 재연되고 있다. 바로 서촌과 북촌으로 대표되는 서울 뒷골목의 옛 풍경이다. 종로구 가회동 일대는 한옥보존지구로 묶여 개발이나 건물 신축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2010년 초 오래된 한옥마저 별도의 건축허가나 신고 없이 간단한 수리를 허용하기로 하는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자 고래등 기와를 자랑하던 한옥들이 갤러리나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었다. 솟을대문과 좌우로 이어진 담장도 헐리고 카페가 들어서면서 고즈넉한 옛 풍경도 크게 변형됐다. 이런 변화는 가회동뿐 아니라 인근의 옥인동, 삼청동은 물론 계동과 사간동 등 북촌지역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경복궁 서쪽 서촌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종로구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통인동 등지의 골목길과 한옥도 카페와 음식점들로 하나, 둘 채워지고 있다. 외부 자본으로 한옥의 용도가 바뀌면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토박이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들까지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우려되는 사업이 하나 있다. 서울시의 ‘성곽마을’ 조성사업이다. 한양도성 인근의 낡은 주거지역을 한양도성과 조화되면서도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활력 있는 곳으로 만든다는 이 사업의 대상은 2018년 말까지 한양 도성 주변 9개 권역 22개 저층 주거지다. 그러나 역사문화와 주민들의 공존을 추구하면서 주거·경제 등 각종 문제를 복합적으로 해결하려는 ‘박원순표 도시재생 모델’이 자칫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만 부를까 걱정이다. 도심 속 낡은 지역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로 거듭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본의 지나친 유입으로 원주민들마저 내몰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성곽마을 조성사업이 성공하려면 지나친 상업화로 흐르지 않도록 원주민들이 이를 통제하고 경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hanga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