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9일 발생한 화재로 폐허로 변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앞을 20일 오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

“불나 죽으나 얼어 죽으나 마찬가지지. 또 불이 나면 어떡하나 겁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휴대용 가스레인지마저 안 틀면 얼어 죽어.”

20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무허가 집단 거주지 구룡마을에서 만난 윤모(여·85) 씨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켜 언 손을 녹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일 발생한 대형화재로 1명이 사망하고 60여 가구가 잿더미로 변한 지 열흘 가량 지났지만, 화재 및 안전이 개선되기보다는 되레 겨울이 다가오면서 화재 위험성이 더 높아진 모습이었다.

추위가 기세를 부리기 시작하자 구룡마을 7지구에는 외풍을 막기 위한 스티로폼 단열재, 단열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비닐 등 화재에 취약한 인화성 물질이 넘쳐났다. 주변에는 열 집 건너 한 개 꼴로 제조년월이 지워진 낡은 소화기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26년 동안 이곳에 살았다는 이모(80) 씨는 “내가 사는 7구역에도 몇 년 전 불이 났지만, 지금 환경이 그때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며 “우리도 화재가 날 때마다 무서워 대책을 마련하고 싶지만, 막상 추위가 몰아치면 스티로폼으로 벽을 막고 화목난로로 손이라도 덥히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전기장판, 전기난로 등 추위를 견디기 위한 겨울철 전열기구 사용도 부쩍 늘었다. 윤 씨는 “손이 시려울 때마다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사용한 지 십 년이 넘었다”며 “가격이 비싸져 새로 장만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씨는 “보일러가 없다 보니 전기난로하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는데, 전기선이 낡아 합선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구룡마을에서는 총 13건의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5건이 난방기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에 집중됐다.

문제는 판잣집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밀집돼 있어 작은 화재도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구룡마을의 미로라고 불리는 6지구는 여성 한 명도 지나기 벅찰 정도로 좁은 골목 옆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소방차 진입은 커녕 화재 시 주민들이 대피로를 찾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주민 한모(72) 씨는 “6지구는 불이 날 경우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화약고나 다름없다”며 “그렇다고 당장 집을 비우고 골목을 크게 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