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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사의 길을 가다 / 서인범 지음 / 한길사

‘연행사(燕行使)’란 중국의 명·청나라의 수도 베이징(北京)에 정기적으로 파견됐던 조선의 사신을 말한다. 고려도 원나라에 사신을 파견했지만, 이 책은 주로 명·청대에 중국으로 조공을 갔던 조선의 사신과 그들이 걸었던 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청나라 때는 베이징을 ‘연경(燕京)’이라고 불렀다. 청나라로 조공을 떠나는 여정을 연행(燕行)이라 한 것은 거기서 따온 말이다. 조공을 떠나는 일행은 연행사를 비롯해 말몰이꾼, 군관, 짐꾼, 통역 등을 다 합치면 500∼600명에 달했다. 이런 거대한 행렬을 이끄는 연행사가 중국을 다녀온 횟수는 무려 1797회.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여행의 경험을 펴낸 책인 ‘연행록’도 600여 종이나 전해진다.

이 책은 10년 넘게 연행록을 번역하고 연구해온 학자가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연행의 여정을 복원해서 찾아간 답사기다. 연행사가 조공을 위해 중국의 수도를 찾아가는 행로에는 사실 한국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연행사의 길을 찾아간 것일까. 저자는 답사를 통해 꾸준히 번역 작업을 해온 연행록을 다시 뒤지며 길 위에 담겨 있는 문학, 역사적인 인물, 흥미로운 음식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여정을 통해 조선 시대 대중외교의 모습과 함께 왕명을 완수하고자 노심초사했던 수많은 연행사들의 숨결과 고뇌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답사는 조선의 의주에서 출발해 압록강을 넘어 산해관을 지나 베이징에 이르렀다는 연행사의 길을 따라간다. 답사의 출발지점으로 삼은 곳은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丹東) 사이로 흐르는 압록강. 저자는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강 저쪽의 신의주를 바라보는 것을 연행사 답사의 첫머리로 삼았다. 이렇게 단둥을 출발해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길이 2000㎞가 넘는다. 그 길을 도보와 버스, 배, 기차, 택시 등으로 23일에 걸쳐 답사하면서 저자는 사료 검증과 현지 인터뷰로 발굴해낸 300여 개의 다양한 일화를 책에 담았다. 중국과 조선의 영토분쟁과 외교전, 명·청 교체기의 전투 현장, 중국 관료들의 빈번한 뇌물 요구, 공식 외교업무를 방해하는 장사치들, 풍토병과 열악한 숙소 등이 이렇게 발굴해낸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서장관’이란 인물이 등장해 저자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필(筆)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서장관은 저자가 등장시킨 가상의 인물. 연행사 중에서 기록을 담당했던 사신인 ‘서장관’을 과거에서 불러낸 것이다. 저자는 서장관 필과의 대화를 통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연행사의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책에는 50여 장의 조선 시대 도판 자료와 저자가 답사 중에 직접 찍은 120여 장의 컬러사진이 담겨 있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