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국어 시험 합격해도 애국가 못 부르면 한국인 못 돼

이미지 크게보기 우리나라 국적 취득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법무부가 주관하는 귀화 필기시험을 치르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지난 10월 서울행정법원은 ‘애국가’를 부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중국인의 귀화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의 판단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2004년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인 최모(여·52) 씨는 “국적법상 귀화 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애국가 가창을 하지 못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신념과 국민 기본소양 항목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최 씨에게 정부가 귀화를 불허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귀화 요건이 까다로운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귀화가 주권자 지위를 부여하는 절차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독일 등 선진국들은 국가관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더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귀화의 자격과 절차 = 귀화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공법적 행위로, 국가 공동체가 그에 속하지 않은 개인을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적법 4조 1항에는 외국인이 법무부 장관의 귀화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귀화 유형에는 일반귀화와 간이귀화, 그리고 특별귀화가 있다. 일반귀화는 우리나라와 혈연이나 지연 관계가 없는 일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며 5년 이상 국내 주소가 있어야 하고 민법상 성년(만 19세 이상)이어야 하며 품행 단정, 생계유지 능력, 국민으로서 기본소양 등을 갖추는 조건이 요구된다. 외국인 노동자가 일반귀화 신청을 했으나 불법행위를 한 전과 때문에 ‘품행 단정’ 조건을 갖추지 못해 귀화가 불허된 사례가 있다. 간이귀화는 우리나라 혈통(자연적 혹은 법적)이거나, 우리나라 국민의 배우자인 외국인에게 해당되며 일반귀화 요건에서 거주기간이 2∼3년으로 감경되는 특혜가 있다. 중국인 최 씨는 간이귀화를 신청했지만 불허된 사례다. 특별귀화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생존한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특별공로자, 우수 인재로 인정되는 외국인에 대해 적용이 되며 거주기간, 성년 여부, 생계유지 능력 등의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귀화가 허가된다. 결국 모든 귀화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품행 단정’과 ‘국민으로서의 기본소양’으로,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 게 귀화의 가장 중요한 요건임을 시사한다. 귀화 절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귀화 조건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필기시험과 면접심사를 보게 되는데 두 시험 모두 2차례 기회가 부여된다. 그리고 귀화 요건 등 진위를 위한 체류동향조사와 혼인의 진정성 및 정상적인 혼인생활 여부 등 조사를 거치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1차 심사 결정이 이뤄진다. 1차 결정을 통과하면 신원 및 범죄정보 조회를 거친 후 최종 심사 결정이 내려진다. 이 같은 절차 후 관보에 귀화내용이 고시되고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 기관에 전산 통보해 우리나라 국민이 됐음을 증명하게 된다.

◇국가관을 갖춰야 귀화 가능 = 최근 귀화 절차와 관련해 논란이 된 점은 바로 ‘품행 단정’과 ‘국민 기본소양’ 부분이다. 최근 귀화 외국인 대다수가 과거 사회주의 국가 등 다른 문화권에서 왔으며 이들에게 국민 정체성 함양은 필수적이라는 게 법무부 측의 설명이다. 한국어 구사능력이나 기본적인 소양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자녀교육은 물론 가정 화합 등 부작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품행 단정과 국민 기본소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귀화 절차에서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는 조건이다. 미국의 경우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문자해득력 및 교육 자격, 도덕적 인격 검증, 헌법 원칙 준수, 충성서약 등 복잡한 절차를 요구한다. 캐나다, 독일 등에도 전과가 있으면 시민권이나 국적을 취득할 수 없게 돼 있다. 독일은 독일어 구사 능력을 정체성 확인의 주요 기준으로 설정, 수준 높은 독일어를 구사할 경우 의무 체류조건을 8년에서 6년으로 감경하기도 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시민권 혹은 국적 취득 이후에도 심사과정에서 허위로 진술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곧바로 자격을 박탈한다.

귀화 필기시험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소양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를 중심으로 출제된다. 법무부가 실시하고 있는 필기시험에서는 대한민국 역사, 정치, 문화, 국어, 풍습 등의 영역에서 객관식 20문제가 출제된다. 국어 문제로는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는 식의 문제가 많이 출제되는 되는 편이다. ‘잔잔한 호수는 마치 ( )과 같다’ ‘엄마 : 영호야, 할머니께 물 한 잔 떠다 드리렴. 영호 : ( )’ 등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가장 적절한 단어나 문장을 보기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문화, 정치, 역사 영역에서는 ‘다음 우리나라 섬 중에서 귤(감귤)이 가장 유명한 곳은 어디입니까’ ‘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국토를 지키기 위해 국민이 책임져야 하는 의무는 무엇입니까’ 등의 문제가 출제된다. 면접시험에서는 애국가, 한국어 능력, 국민으로서의 자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국민으로서의 기본소양 영역에서 문제가 나온다. 애국가 4절 중 1절을 부르게 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측정한다. 국민의 4대 의무, 국경일의 의미,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의 의미, 112 등 긴급전화에 대한 이해 여부도 면접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과 정부 중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행동이 허용되나’ 등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여부도 면접 때 주요한 질문사항이다.

박정민·김병채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