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9일 오전 서울시내의 한 대학 복사실에서 직원들이 출판물 복사 작업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취업준비생 김재헌(31) 씨는 최근 학원 수업에 필요한 2만 원 상당의 토익 교재를 태블릿 PC에 넣기 위해 서울 송파구의 한 전자책 변환 업체를 찾았다가 거절당했다.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으면 복제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인근의 또 다른 업체에서는 별다른 이의 없이 작업을 수락했다. 김 씨는 “강의 교재의 경우 ‘사적복제보상금 제도’를 들어 전체 복제를 꺼려하는 업체가 몇 군데 있지만 쉽게 응해주는 곳이 더 많아 다른 곳에 의뢰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가의 불법 복제가 여전하고,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복제 전송은 손쉬워진 현실에서 저작권 보호와 자유로운 활용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제43차 국제복제권기구연맹(IFRRO) 연례 총회가 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3일간 일정으로 시작했고, 30일에는 국회에서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도입’ 관련 토론회가 열린다.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논의 어디까지 = 사적복제보상금 제도는 디지털 기술 발달로 개인적인 복제와 전송 행위를 규제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복제 행위 등의 간접 수혜자인 기기 제조·운영 업체에 저작권료를 공동 부담시키는 것이다.

또 지나치게 엄격한 저작권 보호가 개인의 자유로운 학문, 창작, 예술 활동을 저해한다는 점도 제도 도입의 근거이다. 2000년대 들어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지난 2000년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KORRA·이사장 정홍택)가 만들어졌지만 업체의 부담 증가,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논의는 중단됐었다. 하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저작권 보호와 활용의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미국, 독일, 일본 등 20여 개국은 이를 시행하고 있다. IFRRO 총회에 발제자로 참가하는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용자가 다양한 복제기를 통해 복제를 마음대로 하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저작권자에게 보상해야 한다”며 “자율적 해결이 어려운 만큼 입법이나 기술적 해결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수업목적복제보상금 제도의 현실은 = 현재 대학에서는 이 제도가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다. 2007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수업 목적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대신, 학생들이 부담금을 분담해 저작권자에게 돌려주게끔 했다.

올해 시행에 들어간 수업목적복제보상금 제도에 따라 현재 전국 397개 대학이 연간 학생 1인당 1300원씩의 보상금을 KORRA에 내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KORRA는 전국 대학 주변 복사업체 1000여 곳과 계약을 맺어 사적복제보상금을 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서대문구와 관악구에 위치한 대학가, 고시촌의 인쇄소와 복사집 6곳에 400페이지짜리 교재의 제본을 의뢰한 결과 1곳을 제외한 5곳에서 모두 가능하다고 답하는 등 불법 복제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C복사집에서는 “‘떡제본’(책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제본하는 것)의 경우 단속에 걸리면 골치가 아프다”면서도 “1페이지당 50원의 가격 이하로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홍택 KORRA 이사장은 “사적 복제 행위에 대한 보상금 도입은 전 세계적 추세”라며 “콘텐츠 창작 여건 조성과 함께 유통과정의 수혜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현미·이근평기자 chm@munhwa.com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 저작물의 복사 전송 등으로 인한 간접 수혜자에게 저작권 분담금을 부담시키는 제도다. 복사를 하는 모든 개인에게 저작권료를 부과하는 대신 예를 들어 복사기, 저장기기, 컴퓨터 제조사 혹은 복제 전송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도서관, 학교, 대기업, 복사업체 등에 저작권 분담금을 일괄 부담시키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