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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는 피해가는 게 상책이다. 10월 가요계가 딱 그랬다. 3년 만에 컴백하는 김동률을 시작으로 서태지가 출사표를 던졌고 로이킴, 악동뮤지션 등 음원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젊은 피’가 연이어 신보를 냈다. 하지만 난세라 불리던 10월을 정리한 주인공은 ‘힙합’이었다. 비주류의 음악이라 불리던 힙합은 이제 대중을 아우르는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10월 중순까지는 김동률과 서태지가 가요계를 양분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힙합 듀오인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개코(왼쪽 사진)가 16일 솔로 앨범 ‘레딘그레이(REDINGRAY)’를 발표하며 판도는 크게 흔들렸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화장 지웠어’는 발매 직후 서태지를 음원 정상에서 밀어냈다. 악동뮤지션과 에일리 등 음원 시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수들도 개코의 밑이었다.

개코의 소속사인 아메바컬쳐 관계자는 “일단 국내 힙합 뮤지션의 실력이 좋아졌다. 과거에는 랩이 생소했지만 여러 예능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들이 인지도를 쌓아가면서 장르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며 힙합이 대중 음악의 주류로 편입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바통은 2년 만에 컴백한 힙합 그룹 에픽하이(오른쪽)가 이어받았다. 그들이 21일 발표한 정규 8집 ‘신발장’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음원 차트에서 일명 ‘줄세우기’에 성공하며 10월 가요계 대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타이틀곡 ‘헤픈 엔딩’은 발표 직후부터 27일 오전 8시까지 1주일간 멜론, 엠넷, 벅스, 네이버 등 총 6개 음원사이트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10월의 마지막은 30일 새 음원을 발표하는 힙합계의 신성 크러쉬가 장식한다. 상반기 첫 정규 앨범 ‘크러쉬 온 유’를 발표해 호평받았던 크러쉬는 지난 8월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OST ‘잠 못드는 밤’으로 음원 차트를 석권하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힙합의 강세는 올해 가요계를 지배하는 정서 중 하나였다. 개코와 에픽하이 이전에도 자이언티, 버벌진트, 산이, 스윙스 등 힙합 뮤지션들이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음원 차트가 출렁였다. 지난달 종방된 Mnet ‘쇼미더머니 시즌3’는 타깃 시청층인 15∼34세 남녀 시청자 기준으로 평균 시청률 1.4%(닐슨 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8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고수했다. 본방송을 챙겨보는 젊은 시청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쇼미더머니’는 그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으는 효과까지 발휘한 셈이다.

한국 힙합은 1990년대 초반 듀스 이후 업타운, 지누션 등을 거쳤고 힙합 그룹을 표방하는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싸이가 미국 서부 힙합의 거장 스눕독과 손을 잡고, 다이나믹듀오는 동부 힙합의 전설이라 불리는 DJ프리미어와 합작한 컬래버레이션 앨범 ‘어 자이언트 스텝(A Giant Step)’을 들고 빌보드에 입성했다.

여기에 바비와 아이언, 버벌진트와 매드크라운 등 미남 래퍼의 등장은 힙합을 좋아하는 여성 팬층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아메바컬쳐 관계자는 “힙합이 사회적 저항의 산물이자 거친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건 편견”이라며 “힙합도 투박한 장르부터 세련된 장르까지 다변화하면서 향유 계층이 다양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