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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세상이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하는 풍조가 만연한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 강박에 사로잡혀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처음 본 누군가에게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사랑인가 운명인가, 아니면 운명적 사랑인가. 심장 이식을 받은 여자가 자신에게 심장을 이식해주고 세상을 떠난 여자의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용의 MBC 수목미니시리즈 ‘내 생애 봄날’은 ‘셀룰러 메모리’라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내용을 감성적으로 연출한 드라마다.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심장 이식을 받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여자 이봄이(최수영)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 강동욱(이준혁)의 형 강동하(감우성)와 예비 조카들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자신에게 심장을 주고 떠난 누군가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이봄이가 병원장 아버지와 이사장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임상영상사로 일하다가 축산업체를 경영하는 강동하와 악연을 맺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봄이와 강동하의 관계가 악연인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이봄이와 강동하가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면서 그녀의 약혼자이자 그의 동생인 강동욱과의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강동욱은 최연소 심장 전문의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형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인물이다. 첫사랑을 형에게 뺏긴 기억이 여전한데, 결혼을 약속한 이봄이가 형에게 마음을 주면서 자신의 사랑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형제의 인연을 잠시 접으면서까지 이봄이와의 결혼을 서두르지만 그녀의 마음이 이미 그의 형에게 가 있는 것을 느끼면서 불안해하는 것이다.

둘째, 뇌사 상태에 빠졌던 강동하의 아내 심장이 이봄이에게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강동욱과의 관계가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봄이와 강동하의 관계에 대한 강동욱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봄이에게 이른바 셀룰러 메모리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부터였다.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이 수혜자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셀룰러 메모리는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지만, 이봄이의 마음이 강동하에게 향하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의 불안이 증폭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강동욱의 관점에서 이봄이와 강동하는 결코 맺어져서는 안 되는 악연이다. 어떻게 포장해도 그는 이미 형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한 번 빼앗긴 상처가 있다. 두 번째 사랑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감과 콤플렉스가 이봄이에 대한 집착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를 탓하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봄이와 강동하의 사랑을 운명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셀룰러 메모리 현상 때문이라면 강동하가 사랑하는 대상이, 그리고 강동하에게 마음이 끌리는 주체가 이봄이인지 아닌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봄이가 파혼을 결심하면서까지 강동하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황은 일반적이라 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명의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형제보다, 사랑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셀룰러 메모리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비롯한 가슴 아픈 인연을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마음이 통하는 사랑의 주체가 될 때 가능한 것이리라.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