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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 논설위원

‘국민 성악가’로 일컬어지는 테너 박인수(76) 백석대 음악대학원장은 가곡과 대중가요를 접목한 ‘향수(鄕愁)’를 불렀다고 해서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제명당했었다. 정지용의 시에 가요 작곡가 김희갑이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서로 다른 음색·음역이 어우러지도록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이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성악계에서는 ‘클래식을 모독했다’며 거세게 비난했던 것이다.

장르가 다른 음악들을 접목·융합한 ‘크로스오버(crossover)’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자연스러워졌지만,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선 더 오래전부터 그랬다. ‘세계 3대 테너’ 중의 한 사람인 스페인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1981년 미국의 포크 가수 존 덴버와 함께 불러 녹음한 ‘아마도 사랑(Perhaps Love)’은 ‘불멸의 기념비적인 크로스오버 음반’으로 전해온다. 미국의 레너드 번스타인은 생전에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반열에 올랐지만, 컨트리·블루스·재즈 등의 리듬과 선율을 클래식과 융합한 미국식 크로스오버 작곡가였다는 평가도 함께 받는다.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정통 클래식 음악을 고수해온 사라 장(33)이 데뷔 25주년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오는 23∼24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26일 내한 공연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크로스오버 연주를 선보인다. 세계적인 음반·공연 기획자 등의 끈질긴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그녀는 미국의 유명 지휘자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제의 역시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결국 마음을 바꾸게 된 배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2012년 연주회장까지 찾아와 악보만 한번 봐달라고 하더군요. 그 후 매달 악보를 하나씩 e메일로 보내왔지요. ‘이거다’ 싶었어요. 비탈리의 ‘샤콘’,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과 ‘치고이네르바이젠’ 등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아리랑, 사물놀이 등의 리듬을 혼합해 한국적인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사라 장은 데뷔한 8세 때에 신동(神童)으로 불리며 이미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크로스오버 연주 무대를 앞두고 “계속 배우지 않고 그대로 똑같이 있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이제 매년 새로운 것을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서도, 크로스오버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것에서도 그녀의 도전이 모두 새 역사를 쓰며 예외없이 큰 감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