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민 / 정치부장

외교안보 라인의 행태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주요 현안을 외신 보도나 북한의 폭로, 야당 의원의 발언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다 드러난 사실조차 확인해주지도 않는 관습화한 비밀주의에 휩싸여 있다. 거짓말도 일삼는다. 오죽하면 통일부 출입 기자단이 청와대에 정부의 ‘대북 거짓말 브리핑’에 대한 대책과 책임을 묻는 공식 항의까지 했을까.

일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외교안보 현안을 남의 ‘입’을 통해 알게되는 건 분명 정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정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투명한 외교안보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다. 외교안보 라인의 무능, 정책적 난맥상, 전략 부재 등이 문제로 거론되지만 근본 원인은 청와대로부터 내려오는 비밀주의와 함구령이다. 하지만 이는 특히 남북관계에 있어 북의 도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막고 때론 북의 도발심리를 부추기며 궁극에는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하는 상황에 이르게 할 수 있어 우려된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10월 4일)에 북한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한다는 사실이 당일 오전에 긴급뉴스로 타진된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어난 남북 해군의 교전(7일) 직후 북이 두 차례나 군사회담을 요구하는 전통문을 청와대로 보냈던 사실, 민간단체 대북전단 살포(10일)를 둘러싸고 남북이 총격전을 벌인 사실들이 모두 북의 발설로 드러났다. 지난 15일 남북 군사 당국자회담 개최를 둘러싼 언론의 취재와 당국의 숨기기는 황당 그 자체였다. 청와대는 국방부에, 국방부는 통일부에 사실 관계 확인을 떠넘겼고, 통일부가 결국 답변을 떠안았지만 회담이 끝나는 순간까지 ‘모르쇠’로만 일관했다. 이날 회담 사실은 야당 인사의 발설로 이미 드러난 상태였는데도 청와대 지시를 받은 게 확실해 보이는 통일부 관계자는 브리핑 내내 18차례나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만 거듭했다.(문화일보 10월 15일자 4면 참조)

박근혜 대통령의 동선이나 일정은 청와대가 엄격한 보도통제를 하는 동안 종종 외신을 통해 먼저 확인된다. 얼마 전 밀라노에서 끝난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의 한·중 정상회담 예고 기사는 중국 언론이, 앞서 지난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예정 사실은 일본 언론이 먼저 보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외신의 취재 소스가 우리 외교안보 관계자일 경우가 적지않다는 것이다.

가장 잘된 외교안보는 투명성을 지키면서 상대와의 협상에서 이니셔티브를 잡는 것이다. 가장 멍청한 짓은 비밀주의를 고집하면서 주도권도 놓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청와대와 정부는, 특히 대북전략에 있어 비밀주의에 빠진 채 주도권도 잃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부는 믿고 기다리라고 하지만 신뢰의 상실이 너무 크다. 최근 관계부처 공보 관계자와 만났을 때 그가 말했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첫번째 강령은 ‘언론의 질의에 모른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알릴 건 알려야 한다는 직업적 책임감과 알리지 말라는 윗선의 요구 사이에서 정말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의 토로에 울분이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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