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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부’의 말런 브랜도와 알 파치노, 코트차림의 신사들이 등장하는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겨울비’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이 ‘그 남자’의 챙 달린 모자다. 추억의 영화와 명화를 통해 친숙한 모자는 중절모의 일종인 페도라(Fedora). 길이 6∼7㎝의 챙이 약간 말려올라가고 모자의 상단인 크라운의 중앙이 움푹 파여 있는 디자인이다.

한때 나이지긋한 중년신사의 상징이었던 페도라가 이즈음 나이와 성별을 초월해 ‘나맛의 멋내기 소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페도라는 스타일 뛰어난 젊은 남녀스타뿐 아니라 40대 이상 남성층으로 확산 중. 페도라가 보온과 개성 연출을 겸한 가을 남성패션의 주요품목으로 인기를 모은다.

전통적인 모직 페도라 외에 벨벳·니트·스웨이드 등 소재도 다양하고, 색상이며 챙의 크기와 크라운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영화제, 시사회, 동료의 결혼식 때 검정 페도라를 즐겨 쓰는 배우 소지섭(왼쪽 사진), 지난 2월 영화 홍보차 내한 때 줄곧 페도라를 썼던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는 소문난 ‘페도라 애호가’. 이들 연예계 스타뿐 아니라 문화가 인물로 시인 고은(오른쪽), 기업인 겸 미술작가 김창일(가운데) 아라리오미술관 회장도 공개행사에 페도라 차림을 즐긴다. 고은 시인은 해외 시 낭송회 때도 검정 양복에 흰 페도라 차림으로 패션감각을 발휘한다.

최근 서울·제주의 아라리오미술관 개관식에 줄곧 페도라 패션을 선보였던 김창일 회장은 “20년 전 야구모자로 시작해 4, 5년 전 외국 친구의 제안으로 페도라를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주얼 복장에도 페도라를 쓰면 어느 정도 갖춰 입은 느낌이 나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며 의상 구두의 색깔에 맞춰 차분한 동색이나 강한 보색 대비의 페도라를 골라 씁니다.” 그는 “모자가 약간 긴 얼굴형을 시각적으로 보정해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모자를 쓰면 얼굴 표정을 숨길 수 있어 편하다”고 밝혔다.

패션전문가들은 “자칫 밋밋하고 단조로운 남성패션에서 모자 하나로 유니크한 개성미를 연출할 수 있다”고 실용성과 스타일을 겸한 페도라의 특성을 강조했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씨는 “일단 클래식하게 모직의 일종인 펠트 소재의 검정이나 진갈색 페도라부터 시도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페도라는 정장이나 캐주얼 차림과도 잘 어울리며 키도 커 보인다”며 “중년의 경우 모자를 약간 앞으로 내려써야 중후한 멋이 돋보인다”고 덧붙였다(반면 젊은 층은 앞머리를 내리고 모자를 뒤로 젖혀 경쾌한 맵시를 살린다).

남성 모자패션과 관련해 패션디자이너 이정우 씨는 “탈모·흰머리 등 헤어스타일 관리가 어려운 40대 이상 남성에게 모자야말로 효율적인 패션소품”이라고 지적했다. 의상 액세서리의 연출이 다양한 여성과 달리, 헤어스타일의 비중이 절대적인 남성패션의 경우 모자의 효용이 높기 때문이다. 운동모자가 아닐 경우 모자 착용이 처음엔 다소 어색해도, 간편하게 스타일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자와 친해져 보라는 이야기다.

모자패션의 대중화에 대해 이 씨는 “모델 출신의 스타일 좋은 연예인들이 특유의 패션감각으로 각양각색 모자를 적극 선보였고 일반인도 모자패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코디네이터의 자문을 받는 일반 연기자에 비해 차승원·김민준·소지섭 등 모델활동을 했던 남성스타들이 시도한 모자패션이 일반인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도쿄 시부야(澁谷) 등지에 페도라전문매장까지 등장했을 정도. 국내에선 백화점 모자코너 및 남성브랜드별 매장에 부분적으로 페도라가 선보인다. 인터넷쇼핑몰도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페도라를 취급 중이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등지에는 모자 맞춤상점도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