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가 / 지그문트 바우만·카를로 보르도니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우리 시대 지식인 두 사람이 ‘국가 없는 시대’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냈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가 바라본 ‘국가 없는 시대’란 국민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국가의 시대’이다. 이는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crisis)’. 이 위기는 과거 경제적 어려움의 상황에 자주 쓰이던 ‘국면(conjuncture)’이나 ‘공황(depression)’과 달리 매우 심층적이고 복잡하다. 따라서 책은 오늘날 국가에 닥친 ‘위기’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 변화하는 현시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의 다양한 양상을 하나하나 검토해간다.

보르도니는 “하나의 위기가 끝나면, 그동안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또 다른 위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며 “이제 위기는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해야 할 뜻밖의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날마다 상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정의한다. 바우만은 오늘날 위기와 관련된 문제의 기원에 권력과 정치의 분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다시 ‘위기’가 당연히 필요로 하는 것, 즉 나아갈 길을 선택하고 거기에 필요한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주체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렇게 국가는 위기를 맞고, 우리는 국가 없는 시대를 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 모두가 동의하는 바로, 이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경제·사회적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심원한 변화를 암시한다는 것. 보르도니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위기, 정치의 공백기를 주장하는 반면, 바우만은 ‘액체 근대’ 이론의 틀 내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한다. 구체적으로는 현대 국가의 위기에서 대의제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 대중사회로부터의 계속적인 탈출에 이르기까지 현대 서구사회의 상황을 분석한다.

“포스트모더니티는 30년 동안 완전히 불타올랐다가 부담스러운 유산을 남긴 채 사그라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처음에는 근대의 위기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습니다. (…) 하지만 견고함을 잃고 외관상 부동의 확실성을 상실한 채 근대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보르도니, 146쪽) “이런저런 징후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고, 계속되는 실험들의 운명은 마치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그러한 실험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합니다. 잔존하는 정치제도들에 희망 걸기를 거부하는 것만이 그러한 실험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바우만, 204쪽)

그러나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위기’에 대한 인상적인 분석보다 이 논의를 위해 참고해야 할 지적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에드가 모랭, 존 그레이, 마누엘 카스텔, 콜린 크라우치, 찰스 틸리 등 다양한 이론가들을 거론함으로써 또다른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친절하고 자세한 ‘옮긴이 주’는 정치 이론에 대한 전문적인 배경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준다. 아울러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바우만과 보르도니의 생각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