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오진택 씨가 직접 스타일링한 ‘클래식 슈트’. 베스트(조끼)와 중절모, 레이스업 슈즈(끈이 있는 정장 구두)까지 완벽하다.

남성에게도 외모가 경쟁력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멋내는 남성이 많다더니, 그루밍족(패션·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이라는 신조어도 익숙하다.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일·코디 클래스도 많아졌다. 패션 기업들이 기업체나 대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스타일링 조언을 하고, ‘패션 수업’도 진행한다.

선후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건 남성 ‘패피(패션 피플)’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 남성들이 패션을 배우더니, 요즘엔 겨루기까지 한다. 특별히 디자이너나 모델도 아닌데 말이다. 밑단을 접어 올려 복숭아뼈를 드러내고, 흰색 바지에 파란색 양말을 매치한다. 소화하기 까다로운 물방울 무늬 셔츠를 비즈니스 캐주얼로 선택하는 센스까지. ‘보통 남자’들의 코디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LF(구 LG패션)의 남성복 브랜드 ‘일꼬르소’는 스타일링 콘테스트를 진행했다. 세계적인 패션 디렉터이자 ‘꽃중년’의 상징, 닉 우스터의 오는 10월 첫 방한을 기념한 이벤트. 자신이 직접 코디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방식이다. 참가방법이 복잡해 20∼30대가 압도적일 것이라는 내부 예상과 달리, 40∼70대 지원자도 상당히 많았다는 후문. 이들은 신청 후에도 전화로 심사기준 등을 꼼꼼히 묻는 등 20∼30대보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한다. LF 관계자에 따르면 중년 지원자들 중에는 인터넷상에서 꽤 알려진 대구의 60대 패션블로거도 있었고, 이제 막 꾸미기에 재미를 들린 50대 회사 중역, 또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옷 잘 입기로 유명해 아들이 대신 신청해준 남성도 있었다.

이벤트를 기획한 지승렬 일꼬르소 마케팅팀 대리는 “인터넷 투표에 부치게 될 9명의 합격자는 아무래도 멋내기에 익숙한 20∼30대가 많지만, 아쉽게 탈락한 지원자 중에는 40대 이상이 꽤 된다”며 “애초 굉장히 세련된 사진이 올라올 거란 기대는 안 했는데, 스타일링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서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지 대리는 “콘테스트에 참여한 중년들이 즐겨 착용한 건 화이트 팬츠와 선글라스, 포켓스퀘어 등이다. 한국 남자들의 패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29일 공개된 ‘톱9’은 오프라인 투표와 내부심사를 거친다. 10월 중순 결정될 최종우승자는 전명진 사진작가와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남성복 패션 박람회 ‘피티워모’를 참관하게 된다. 말 그대로 ‘스타일 기행’의 기회를 획득한다.

이 같은 콘테스트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면, 일단 스타일 클래스를 눈여겨보자. 수년 전부터 패션기업들은 기업체와 대학교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최신 트렌드와 전략적인 패션 스타일링을 전파했다. 남성들이 자신감을 갖고 스타일 겨루기에 나서게 된 데에는 이 같은 ‘공부’도 밑거름이 됐다. 신원의 ‘반하트 디 알바자’가 대표적. 이탈리아 클래식 슈트 스타일을 표방하는 이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정두영 실장이 직접 강연에 나선다. 지금까지 현대·롯데 등 주요 백화점과 동화약품, 신한금융그룹, OCI그룹, 그리고 패션 전문 동호회인 ‘디젤매니아’회원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진행했다.

가장 인기있는 건 남성들이 가장 고민하는 스타일링 중 하나인 ‘비즈니스 스타일’ 연출법. 호응도가 매우 높다. 정 실장은 보통 ‘유연한 정장’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이 스타일의 정의와 코디 규칙을 이론과 모델 시연을 통해 전달한다. 강추경 신원 과장은 “패션에 관심이 없을 줄만 알았던 중년들이 의외로 질문도 많이 하고, 복식용어도 잘 알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즐기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지난 8월 30일 ‘올바른 슈트 스타일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현대백화점 목동점 클래스에 참석했던 한 참가자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비즈니스 캐주얼’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스타일 제안까지 받아서 유익한 경험과 기회가 됐다”고 평했다.

이밖에, 코오롱 FnC가 카이스트·고려대 등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입사 면접을 위한 옷차림이나 소개팅에 성공하는 코디법 강의를, LF는 문화계 전반에 불고 있는 ‘멘토 열풍’을 반영해 토크콘서트와 스타일리스트 강의를 버무린 행사를 개최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정두영(왼쪽) 디자이너가 지난 8월 30일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 열린 클래스에서 설명하고 있다. 신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