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정치부 차장

도무지 메아리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진실성을 갖고 남북대화를 제안해도 북한의 화답은 없다. 한반도는 신뢰의 벽돌을 한 장이라도 쌓아올리기는커녕 거대한 마(魔)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북핵 6자회담이 중단된 지 6년이 다돼간다. 6개국이 고생 끝에 도출한 9년 전 9·19 공동성명은 사문화될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그동안 외교안보 당국이 심리적 위안을 삼았던 ‘한반도의 안정적 상황 관리’라는 최소한의 최대 목표치조차 요즘 같다면 긍정 평가가 나오기 힘들다. 지난 봄 4차 핵실험 도발 위협이 한껏 높아지다 한풀 꺾인 듯하나 결코 안도할 상황은 아니지 않나. 가장 우려되는 점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 및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가능성이다.

북핵 폐기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는 한 대화도 없다는 한·미 양국의 확고한 전략 뒤로 벌어져온 일이다. 오히려 한·미의 굳건한 원칙이 무대 뒤에서의 못된 짓을 가리는 장막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북한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줄 정도의 대북제재도 국면을 바꿀 만한 수준에는 못 미친다. 최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황준국 6자회담 수석대표도 미국과 ‘공감’만 확인하고 돌아왔지, 해법은 빈손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전략과 원칙을 버리는 게 답은 분명 아니다. 무원칙하게 원칙을 바꾸라는 의미도 아니다. 아쉬운 건 원칙을 실현할 다양한 수단과 해법에 대한 외교 당국의 전략적 사고와 유연성, 융통성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점이다.

외교의 진가는 동맹외교가 아닌 적과의 외교에서 발휘된다. 한국에 악행을 되풀이하고, 온갖 폭언으로 심리전을 펴는 북한이 쉽게 호응할 걸로 외교 당국이 믿었을 리도 없지 않은가. 핵무기가 북한 주민 인권 보호용이라는 북한의 궤변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신년사나 3·1절, 8·15 광복절 경축사나 독일 드레스덴공대·유엔 총회 연설에서 아무리 대화를 호소해도 돌파구 기대는 무리다. 윤병세 외교부·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흡수통일은 절대 없다”고 매번 훈수해봐야 역시 부질없다.

이쯤 되면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라는 절박감으로 다양하고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액션플랜을 풀 가동해야 한다. 외교에서도 현실에 기반하되 창의력과 상상력이 절실할 때다. 어떻든 새 국면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믿을 만한 나라가 못 된다’ ‘북한은 외교 상식으로 이해할 나라는 아니다’라는 경험칙을 전제로, 대화의 장에 끌어내고, 동력을 이어갈 액션플랜이다. 공개연설 몇 번으로 북한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대화 채널을 총동원해 장문의 대통령 편지라도 전달하든가, 대화하면 반드시 얻을 게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남북 모두 가치를 인정하는 7·4 공동성명, 6·15 선언, 9·19 성명의 존중을 고리로 김정은을 꼬드길 필요도 있다. 진정성이 확인되면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북핵 구상인 ‘코리아 포뮬러’는 도화지에만 그린 채 서랍에 보관할 게 아니다. 미·중을 뛰어다니며 더 강력하게 설득해야 한다. 가장 절실한 한국이 손놓고 있으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먼저 나설 리도 만무하다. 꺼져 있는 북핵 해결의 엔진에 빨리 재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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