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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연세대 교수·경영학

애플이 지난 9일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라는 신규 스마트폰과 함께 스마트시계인 ‘워치’ 및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를 공개했다. 이번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였다. 애플은 그동안 한 손으로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모든 화면을 터치해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철학 때문에 4인치대의 작은 화면을 가진 스마트폰만 고집해 왔다.

하지만 화면 크기가 5.5인치로 늘어난 ‘아이폰 6 플러스’가 출시되면 5.7인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4’와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매년 화면 크기가 상대적으로 큰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선보이며 ‘패블릿’(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합성어) 시장을 꾸준히 공략해 왔다. 상대적으로 대형 화면을 가진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보다 더 위협적인 경쟁자는 중국의 IT 기업들이다. 지난 2분기에는 창업한 지 4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 기업인 샤오미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중국 내수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기존의 스마트폰보다 50% 이상 저렴한 제품을 개발,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물량만을 온라인으로 완판(完販)하는 ‘헝거 마케팅’ 전략으로 샤오미는 스마트폰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했다.

지난해 3분기에 휼렛팩커드(HP)를 누르고 글로벌 PC 시장 1위 업체가 된 레노버는 모토로라를 인수한 후 지난 2분기에 전세계 보급형(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50%를 넘던 삼성전자와 애플의 시장점유율 합계는 40%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에 육박하며 무섭게 한국을 추격해 오고 있다.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전자전시회 ‘IFA 2014’에서 중국 TV 업체인 TCL은 세계 최대인 110인치 곡면 초고화질(UHD) TV 를 선보였다. 그동안 TV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신제품을 내놓던 국내 IT 기업들의 기술력을 거의 따라잡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UHD TV 시장에서 글로벌 톱10에 이름을 올린 중국 업체는 6곳이나 된다. 1위는 삼성전자가 차지했지만, 2위와 3위는 하이센스, 스카이워스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다. UHD TV 시장이 열린 2012년 3분기까지만 해도 중국 TV 업체 시장점유율은 6.2%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가 넘는다.

PC 시장처럼 스마트폰 시장도 빠른 속도로 부품이 모듈화하고 표준화하면서 저가폰과 프리미엄폰 간의 품질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제조 부문에서 원가 경쟁력을 가진 중국 IT 기업들의 저가 스마트폰 공세에 국내 IT 기업들이 고전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IFA 2014’에서 선보인 전자제품을 보면 중국의 제품들이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이제는 기술력에서도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한국 제품 ‘베끼기’ 수준에서 벗어나 기술이나 디자인 수준도 한국의 턱밑까지 쫓아왔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시장의 무게중심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보급형 시장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한 중국의 IT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국내 IT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에다 기술력마저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