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올가을엔 ‘가벼운 남자’가 대세. 어깨선이 부드럽고, 티셔츠를 받쳐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슈트 재킷이 사랑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빨질레리·갤럭시 제공

지난 4일(현지시간)부터 이어진 세계 최대 패션 축제 ‘뉴욕패션위크’가 11일 막을 내렸다. 런웨이 위는 반 년을 훌쩍 앞서간다. 글로벌 트렌드세터(각종 유행을 창조·수호·대중화하는 사람)들은 이미 내년 봄·여름 트렌드를 분석하느라 바쁘다. 허나 당장 내일 입을 옷도 걱정인 범인들에겐 ‘그들만의 이야기’. 뉴욕까지의 물리적 거리보다 멀다.

우선 올가을·겨울 경향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번 시즌엔 슈트 공식이 완전히 무너졌다. 포멀(formal·격식 있는 옷차림)과 캐주얼(casual·간편한 옷차림)이 혼재하고, 어깨엔 힘이 빠졌다. ‘가볍고 부드러운 남자’를 표방하는 것. 십수 년째 같은 양복을 입어도 별다른 차이를 모르는 남다른 정신력의 소유자라면 그냥 지나쳐도 된다. 패션은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이니까.

◆ 무너진 슈트 공식 … 섞어 입고, 겹쳐 입고

하얀 와이셔츠에 각 잡힌 넥타이로 대표되는 정갈한 느낌의 슈트. 그 공식은 이제 완전히 허물어졌다. 수 년 전부터 유연해지기 시작한 슈트차림은 편안한 ‘일상의 옷’으로 재탄생했다.

이 흐름을 타고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보다 여유로운 핏감(몸에 붙는 정도)의 슈트를 선보였다. 재킷을 오픈한 채로 셔츠의 네크라인을 자연스럽게 풀어헤쳤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또 전형적인 클래식 슈트에 투박한 워커를 신고, 품이 넉넉한 점퍼를 걸치면 감각적인 믹스매치(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섞어 입는 방식) 스타일이 완성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베스트(조끼)까지 구성된 딱딱한 슈트 안에 라운드 티셔츠를 매치, 슈트 본연의 중압감을 중화시켰다.

독특한 레이어링(겹쳐 입기)도 올가을·겨울 슈트 스타일링의 핵심. 그 어느 시즌보다 과감해졌다. 셔츠 위에 셔츠, 스웨트 셔츠(맨투맨 티) 위에 스웨트 셔츠, 점퍼 위에 점퍼를 입는 식이다.

알렉산더 왕은 터틀넥+셔츠+스웨트 셔츠를 겹쳤다. 이때 검정으로 색을 통일해 균형을 맞추면 세련미를 뽐낼 수 있다. 캘빈클라인 컬렉션은 셔츠만 3장을 겹쳤다. 면 소재 셔츠를 두 번 입고, 여기에 비슷한 톤의 가죽 셔츠를 걸쳤다. 또 집업 점퍼 위에 다른 색 집업 점퍼를 덧입히기도 했는데, 한때는 ‘패션 하수’들이나 시도할 법한 스타일이 주목받는 게 흥미롭다. 준지의 레이어링은 ‘무너진 슈트 공식’의 정점. 검정 가죽 점프 슈트에 매우 포멀한 줄무늬 롱 재킷을 매치한 것. 가죽 본연의 터프함을 중화시켜 주면서도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뿜어낸다.

◆ 어깨 힘 뺀 재킷 … 하이브리드형 아이템

슈트 공식이 무너지면서 포멀과 캐주얼의 혼재는 이제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따라서 슈트의 재킷은 애초부터 청바지나 면바지와도 잘 어울리게 디자인되고 있다. 패션에도 ‘하이브리드’ 바람이 거센 것.

국내 남성복브랜드 갤럭시에서는 올가을, 상황별 착장이 가능한 다양한 하이브리드형 아이템을 출시했다. 부자재를 줄여 어깨의 부담을 줄이고 무게를 낮췄다. 한마디로 힘을 뺀 ‘부드러운 어깨’. 빨질레리 역시 따뜻해 보이지만 가벼운 착용감의 재킷을 대거 선보였는데, 기존 남성복에서 보이던 ‘각 잡힌’ 라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어깨 패드와 심지를 얇게 처리해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강조했다. 이지영 제일모직 빨질레리 디자인 책임은 “이번 시즌 키워드는 ‘소프트’다. 부드러우면서 가볍고, 동시에 편안함을 주는 상품이 선택을 받을 것” 이라고 말했다.

◆ 기능 · 실용 강조 … 3D 효과 소재

아웃도어 의류에서 강조하던 ‘기능’이 남성복에 녹아든 것도 올가을·겨울 남성복 트렌드 중 하나. 발수-방풍-축열에 강한 소재나 충전재를 사용한 아우터(겉옷)들이 대거 쏟아진다. 한쪽 면은 방모 소재, 다른 쪽 면은 발수 기능의 소재를 사용한 리버서블(양방형) 코트도 상황에 맞게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 입을 수 있어 주목된다.

영화에서만 보던 3D 효과를 옷에서도 볼 수 있다. 빨질레리는 3D 효과가 나는 조직감의 고급 소재를 옷에 적용했다. 2중 그물망 형태로 제작된 소재는 착장했을 때 패턴이 입체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남성의 매력적인 실루엣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 그동안 남성복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저지(부드럽고 곱게 직조한 직물)원단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 책임은 “외관상으로는 울 소재의 상품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신축성이 있어서 장시간 착용해도 착용감이 좋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