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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코엘류의 소설‘연금술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길을 세계적 성지로 만들었다. 어려서 우울증을 앓고, 젊은 시설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 투옥되기도 한 그는 서른여덟, 세계적 음반회사의 중역 자리를 버리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다. 그가 800㎞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얻은 영적 깨달음 속에 나온 작품이 데뷔작 ‘연금술사’(1988)였다.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뤄지도록 돕는다”는 문장으로 기억되는 작품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고 많은 이들을 스페인 북부 흙투성이 길로 불러들였다.

우리들 삶이 그렇듯 소설에는 당연히 주인공의 운명이 펼쳐지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연금술사’처럼 특별히 장소가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 있다. 공간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거나, 그곳이기에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작품들. 그런 소설의 책장을 넘기며 책 속 여행을 떠나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최신작과 대중적인 스테디셀러들을 골랐다.

‘연금술사’로 시작했기에 코엘류의 신작 ‘불륜’을 펼쳤다. 소설은 스위스 제네바의 일간지 기자인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묻게 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는 제네바 관광지뿐 아니라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가 잘 다니는 이색 장소들이 나온다. 유명한 분수, 명물 아이스크림 가게, 성당, 종교 개혁의 벽, 호숫가 식당까지…. 코엘류의 작품에는 흔히 장소가 꽤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데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고 프랑스의 생사뱅과 루르드를 거쳐 피에트라 강가에서 끝나고, ‘승자는 혼자다’는 영화제가 벌어지는 칸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체코의 인기작가 밀로시 우르반의 신작 소설 ‘일곱성당 이야기’는 프라하의 대표적인 여섯 개의 성당과 상상 속의 일곱 번째 성당을 찾아 나선 남자의 이야기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중심으로 프라하의 역사, 문화유산, 그 풍부하고 찬란한 모습과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이 묘사된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리스본이 주인공 중 하나다. 고전문학을 가르치던 그레고리우스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여자를 구한 날, 우발적으로 미지의 인물을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리스본 산타아폴리니아역에 도착한 그는 다음 날 돌아가려 하지만, 리스본의 빛나는 햇살에 끌려 그곳에 머물기로 한다. “빛나는 광채는 지나간 모든 것을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고, 과거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눈부셨다.” 익숙한 삶, 정돈된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에 불꽃을 일으킨 리스본의 햇살이 얼마나 빛나는지 궁금하다.

한국인들에게 인기 여행지인 터키 이스탄불을 떠올리면 오르한 파무크의 ‘순수박물관’이 생각난다. 소설에서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한 주인공 남자는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모아 ‘순수박물관’을 만든다. 1970년대 터키의 풍경, 그들의 살림살이가 눈앞에 보듯 생생한데, 작가는 실제로 2012년 이스탄불에 순수박물관을 열었다. 작품을 구상하던 단계에서 박물관의 배경이 될 공간을 구입했다. 이곳에는 소설의 각 장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전시돼 있다. 전형적인 뉴요커인 폴 오스터의 작품엔 뉴욕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인기작가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은 미국의 자연풍광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케네디의 소설 ‘빅픽처’의 주인공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몬태나주로 도망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물기 머금은 몬태나주의 숲과 호수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가까운 일본, 도쿄(東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인상적인 것을 뽑으라면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동경만경’이다. 도쿄만의 부두 창고 육체노동자 료스케, 그 건너 오다이바 대기업 홍보부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 미오. 도쿄만을 사이에 둔 이 남녀는 상처를 넘어 사랑을 이뤄간다. 소설에서 도쿄만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인 동시에 부두의 불빛을 보며 료스케를 그리워하는 미오처럼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장치이다. 석양에 물든 도쿄만, 모노레일과 레인보 브리지 등이 생생한데, 작품은 료스케가 “만약 내가 지금, 바다로 뛰어들어 도쿄만을 헤엄쳐서 너가 있는 곳까지 간다면 나를 끝까지 사랑하겠느냐”는 고백으로 끝난다.

한편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국민작가 에릭 오르세나의 소설 ‘오래오래’는 전 세계 유명 정원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한 정원사의 40여 년에 걸친 사랑의 기록으로 작품의 주무대가 주인공을 따라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들이기 때문이다. 파리 식물원은 사랑이 시작되는 곳. 베르사유 정원은 결별의 고통과 재회의 환희가 교차는 곳, 세비야의 알카사르 정원은 정열이 불타는 환상적인 공간, 벨기에의 정원은 조화와 행복의 공간, 일본의 한 저택에 만들어진 가레산스(枯山水) 정원은 골계미가 넘치는 섹스의 장소, 그리고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베이징(北京)의 원명원은 사랑의 완성과 회상의 공간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