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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도쿄 산책자’

이제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 도시.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중 하나. 서울과 닮은 듯 이질적인 곳. 강상중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가 도쿄(東京) 곳곳을 걸어다니며 쓴 인문 에세이 ‘도쿄 산책자’(사계절)는 한국인에겐 ‘안 가봐도 익숙한’ 도시에 새로운 색(色)을 입힌다. ‘당신’의 도쿄와 강 교수가 ‘고민하는 힘’으로 바라본 도쿄를 비교해 보자.

◆ 롯폰기(六本木)힐스 = 도쿄에서 가장 높은 빌딩들이 있는 ‘신(新)부자 거리’. 강 교수는 이곳에서 ‘포스트모던(근대 비판이라는 입장에서 생겨난 문화·사상)’을 떠올린다. 과거 미군 기지가 있어 외국인이 많고, ‘난잡’했던 거리에는 ‘정통’이나 ‘권위’ 같은 건 없었다.

강 교수는 “기성관념을 싫어하는 신흥 부자들이 그러한 장소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척하는 것이 전혀 없기에 인간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직접 포스트모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롯폰기를 예찬한다. 모리타워 52층에서는 황거(皇居·일왕이 거주하는 곳), 메이지(明治)신궁, 도쿄대가 보인다. 탈근대의 상징에서 ‘근대’를 내려다보는 격.

◆ 하라주쿠(原宿) = 패션의 거리. 일본 젊은 세대의 취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사실은 한때 ‘미군의 거리’였다. 강 교수에 따르면 ‘중층적으로 역사가 겹쳐진 장소’. 2차 대전 후 미국은 주둔군을 위해 요요기(代代木) 주변에 숙소·학교·교회·극장 등을 세웠다. 이때 하라주쿠가 국제적인 거리로 변모했다.

이국적인 정서에 이끌려 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전쟁, 미군, 점령이라는 색채가 탈색됐다. 태생이 비슷한 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의 ‘국제거리’와 가장 큰 차이점. 도쿄 시민들에게 하라주쿠는 ‘기억이 정화되는 거리’이다. 메이지신궁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영향도 있다. 실제로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하라주쿠는 인근에 학교나 도서관이 많고, 파친코나 유흥업소도 없다.

◆ 신오쿠보(新大久保) =‘한류의 성지’. 한국식 마트와 식당, 화장품 가게가 즐비한 곳. 일본 전역에서 한류팬들이 모여드는 곳. 애초 이 일대는 전후 한국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고 1980년대 말부터 코리아타운으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중국, 태국,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도쿄 내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가 하루 종일 들리는 곳이기도. 강 교수는 “아시아화가 진행되는 현재 일본의 편린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다른 언어를 말함으로써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단절되는 문제는 있지만, 전통에서 해방됨으로써 더 자유로워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고찰한다.

◆ 진보초(神保町) 고서점가 = 200여 개 서점 중 절반이 헌책방. 여전히 세계 최대의 서점가. 사실 에도(江戶)시대에는 무가(武家)의 저택이 많았다. 그러다 메이지시대에 학교나 병원이 세워지면서 책방이 늘었다. 공들인 간판이나 화려한 네온, ‘사주세요’ 하는 기색도 없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시장 서비스의 결여. 그러나 이 ‘아날로그적 지(知)의 세계’는 그래서 견뎠다는 게 강 교수의 평. 그는 “시대에 알랑거리지 않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마존이나 구글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 거리의 매력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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