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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무크 ‘이스탄불’

여행은 ‘보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차라리 ‘생활자’의 태도를 취해보는 것. 잠시나마 현지인의 일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오르한 파무크의 자전적 에세이 ‘이스탄불’(민음사)은 터키로의 ‘간접 여행’을 돕는 최고의 책이다. 다만, 예의 그 ‘화려한 터키’가 아니라 파무크의 영혼처럼 ‘음울’하다는 게 주의사항.

배경은 파무크가 나고 자란 1950∼1980년대. 책이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소년과 청년의 눈으로 바라본 고향, 정확하게는 2000년 역사에서 가장 나약한 시기를 지나던 이스탄불의 모습이 펼쳐진다. 흔한 컬러판 여행서의 이국적인 풍경보다 훨씬 울림이 큰 흑백사진도 가득하다. 이 낡은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왜 파무크가 “오스만 제국의 몰락의 정서와 가난 그리고 도시를 뒤덮은 폐허가 부여한 슬픔은 나의 전 생애 내내 이스탄불을 표상하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는지 이해된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로 나뉜다. 파무크는 1960년대의 보스포루스를 어둡지만 신비로운 장소로 그린다. “보스포루스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서 돌아오는 부인들을 태운 모터보트,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는 멍하고 우울한 손님들을 태우고 이스탄불의 한 연안에서 다른 연안으로 가는 페리보트,…보스포루스를 지나가는 배들을 세면 내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행동을 한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꾸밈없는 텍스트를 통해 ‘여행’을 마친 독자들은 이 ‘우울한 장소’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파무크가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이스탄불을 좋아하듯. 그건 이 탁월한 노벨상 수상자가 (스웨덴 한림원의 평처럼)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하게 이끌기 때문이다.

박동미 기자, 사진 =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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