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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매일 밤 여행가방을 싸는 주마간산식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면 “유서 깊은 옛 도시에서 몇 달쯤 살아보면 어떨까” 싶어진다. 이탈리아에 살며 ‘로마인 이야기’시리즈 등을 집필한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 혹은 풍광 좋은 남프랑스, 기후 좋은 로마에 집이 있는 정명훈·조수미 씨가 아니라도, 주민으로서 이국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온통 명화인 미술관 박물관, 기원전 돌이 널려 있는 고대로마 유적지를 달리듯 둘러보지 않고, 이웃과 오늘의 날씨며 축구리그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역의 비경을 즐기는 삶은 어떨까.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이런 ‘긴 여행’을 실천한 것은 마흔 즈음이었다. 37세부터 마흔까지 그는 일본을 떠나 유럽에서 살았다. 어느 날 아득히 먼 곳, 먼 시간 속에서 북소리가 들려왔고,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는 남겨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긴 여행을 실행했다. “일상에 얽매여 속절없이 나이만 먹기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에서 부엌 딸린 아파트를 빌려 몇 개월간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상주하는 여행자’가 된 것이다.

3년간의 ‘고립된 이국생활’ 중 그는 글에 집중해 소설을 쓰고 번역하며 여행일기도 썼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는 이 무렵 그리스에서 쓰기 시작해 시칠리아를 거쳐 로마에서 마무리됐고, ‘댄스 댄스 댄스’는 로마에서 시작해 런던에서 완성됐다.

‘먼 북소리’(문학사상)는 1987∼1990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럽서 생활한 3년간의 여행일기를 담고 있다. 첫 경유지인 헬싱키를 시작으로 잘츠부르크음악제의 오스트리아까지,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쓴 글들. 유럽 여행기에는 로마, 토스카나와 페트라 로도스섬 카르파토스 등 그리스, 이탈리아가 비중있게 등장한다.

아테네에서 미코노스를 찾았다가 카잔치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는 카잔치키스의 고향이자 소설의 무대인 크레타섬을 찾는 식이다. 크레타섬에선 일부러 찾은 남쪽 바다에서 수영을 못한 것은 쌀쌀한 날씨 탓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점심시간에 버스 안에서 술판을 벌인 운전기사와 차장이 구불구불 고갯길을 운행하며 날카로운 칼로 치즈를 잘라 승객에서 나눠주는 소동에 경악한다.

주차사정이 열악한 로마에선 콜로세움, 바티칸미술관보다 주차하는 묘기만큼 재미난 구경거리가 없다며 자신이 집을 구하고 차를 운행하며 경험한 당황스러운 일화들을 공개한다. 자신에게 편한 것만 생각하며 재미있게 즐겁게 살아가는 이탈리아인과 또 다르게, 그리스인은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국가 현실을 생각하며 분열적으로 암울해져 가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연고도 없고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채, 홀로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무라카미의 유럽여행기는 현지 생활인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각별하게 와 닿는다. 추위와 식사를 제외하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 더없이 좋은 헬싱키, 지방마다 요리 이름이 다른 데다 이름이 길어 외우기 어려웠던 오스트리아. 작가가 “친한 사람에게 편지 쓰는 기분으로” 솔직하게 기록한 글은 20여 년 전의 경험담이지만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소설과는 또 다른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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